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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남한산성’, 말이 칼보다 날카로운 영화”(인터뷰①)

입력시간 | 2017.10.03 12:00 | 박미애 기자 oriald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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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 원작 영화 ‘남한산성’ 정통사극 도전
이병헌 “‘남한산성’, 말이 칼보다 날카로운 영화”(인터뷰①)
이병헌(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사극은 세 번째다. 이병헌 얘기다. ‘광해, 왕이 된 남자’와 ‘협녀, 칼의 기억’에 이어 ‘남한산성’으로 또 한 번 사극을 택했다. 전작들이 픽션이 결합한 팩션극이라면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정통사극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1인2역으로 광해를 연기하며 역사 속 인물을 설핏 맛봤지만 정통사극은 처음이기에 역사 속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이병헌의 마음가짐은 다른 때와 달랐다. 진지했다. 그는 “실존 인물이어서 왜곡되게 그리거나 나의 상상을 가미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3일 개봉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을 연기했다. 최명길은 청이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인조 14년) 당시 청과 화친으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화론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극중에선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선택한 길이지만 대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척화론자들에 배척당하며 외로운 싸움을 펼쳤다. 최명길이 꼭 청병에 둘러싸여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같다. 최명길의 고군분투에 마음이 쓰이는 건 그의 주장, 신념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이병헌의 연기에 있다. 낯빛에 서린 근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도 온몸에서 느껴지는 비감은 380년전 최명길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만 같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정통사극에 도전한 이병헌을 만났다. 그는 “전투신도 있지만, 명길과 상헌 두 사람이 치고받는 말이 칼보다 더 날카롭고 힘있다”고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줬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읽었나.

△안 읽었다. 출연을 제안받고 ‘남한산성’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몰라서 (황동혁) 감독에게 책을 읽는 것이 연기에 도움될지 물었는데 ‘안 읽어도 된다’고 했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완벽했다. 김훈 작가도 자신의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좋다고 했다더라. 시나리오에 충실하면서 병자호란이나 최명길과 김상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본적인 자료들을 찾아 봤다. 책은 이제 읽으려고 한다. 김훈 작가가 제작사 대표 편으로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을 보내줬다.

-‘남한산성’은 최명길과 김상헌(김윤석 분), 두 인물의 소신과 매력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처음부터 최명길 역에 제안을 받은 건가.

△그렇다. 최명길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의외다’였다. 감독도 ‘고맙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이게 뭐지’ ‘김상헌을 했어야 했나’ 싶었다(웃음). 그만큼 상헌이 매력적이다. 관객은 누구에게 마음이 갈지 궁금하다.

-최명길에게서 주체할 수 없는 큰 슬픔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내내 감정을 다스리다가 후반부에 딱 한 번 울음을 터뜨린다. 의도한 건가.

△강대국 사이에 끼어 나라와 백성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니 얼마나 비참했겠나. 최명길은 죽지 못해 사는 것, 그것 외에 다른 감정이 없었다. 비통한 감정이 베이스였다. 울컥했던 순간은 여러 번 있었다. 명길이 상헌과 격렬히 다투다 허리를 꼿꼿히 펴고 “임금이 무엇이옵니까”라고 묻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찍은 게 있다. 청의 답서를 읽는 장면에서도 되게 슬펐다. 몇 장면에서 눈물이 났는데 감독이 그런 장면이 반복되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해 완성본에서는 다른 컷이 들어갔다. 그래서 인조의 삼배구고두례 장면이 더 애절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본인이라면 380년전 그 상황에서 명분과 실리,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나.

△판단하기 어렵다. 이 영화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선뜻 누구 편에 설 수 없었다. 누가 옳다, 그르다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50대 50으로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명길이나 상헌, 두 사람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같은데 서로 다른 이념 때문에 대립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슬펐다. 그래도 명길을 연기해서일까. 명길이 “(청과 화친으로) 환궁을 하더라도 (청에 맞서자고 한) 김상헌을 버리지 마소서”라고 인조에게 말하는 것이나, “제발 공격을 멈추시오. 우리 백성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소”라고 칸에게 절박하게 부탁하는 장면 때문에 0.1% 정도 명길에게 마음이 더 기운다.

-‘남한산성’에는 주옥 같은 대사들이 많다. 최명길의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뭐였나.

△앞서 말했듯이 상헌과 치열하게 논쟁하며 ‘임금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사와 칸에게 ‘우리 백성은 아무 죄가 없다’고 말하는 대사다. 명길의 대사들이 에둘러 표현하는 게 많다. 정통사극인 만큼 인물을 표현하는데 왜곡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대사(“임금이 무엇이옵니까”)만큼은 직구를 날리고 싶었다. 감독이 한 달을 고민해 오케이를 했고, 명길이 처음으로 쉽고 직접적으로 던진 대사였다. ‘백성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대사도 명길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여서 기억에 남는다.

‘남한산성’에 정말 좋은 대사들이 많다. 어떤 분은 시나리오를 평생 소장하고 싶다고도 했다. 명길 대사뿐 아니라 상헌이 날쇠(고수 분)에게 격서 운반을 부탁할 때 “전하 때문에 하는 거 아니요”라면서 “백성은 봄에 씨 뿌려 겨울에 굶지 않는 세상을 꿈꿀 뿐이오”라는 날쇠의 대사는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가슴에 와 닿았다.

-각 인물의 매력이 누구 하나 치우침 없이 잘 드러나 있다. 캐릭터가 도드라져 보이기보다는 작품이 더 돋보인다. 배우들의 배려가 컸을 것 같다.

△배우도 그렇지만 감독이 정말 고생했다. 작업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영화를 보니까 이야기나 감정을 차곡차곡 잘 쌓아 올렸더라. 똑똑한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촬영을 할 때에도 가감 없이 깔끔했다. 무서울 정도로 자기가 뭘하고 뭐가 필요한지 정확히 알았다. 사극 촬영이 정말 어렵다. 이 많은 배우, 스태프를 데리고 촬영하면서 한 테이크에 ‘오케이’를 하기도 했다. 저예산 영화도 아니고 시간과 돈에 쫓기지도 않는데 매순간이 정확했다. 감독이 얼마나 예리한 사람인지 알고 나서는 믿음이 생겨서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

-‘남한산성’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느낀 게 많았다. 하나는 정치를 하고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의 처지가 욕도 많이 먹고 정말 힘들 수밖에 없는 자리임을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의 판단 하나로 몇 천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내 입장에서 자신을 위한 결정이 아닌 나라 전체의 생각을 가르는 결정이라면 함부로 어떻게 하자고 못할 것 같더라. 자신의 생각을 소신있게 지켜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남한산성’ 의 시대와 현재가 닮은 데가 있다고 느꼈다. 생각이라는 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건데 청과 화친을 주장했다고 신하들이 명길을 ‘미친 놈’이라고 몰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구나’, ‘우리가 아직도 과거를 살고 있나’ 그런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이병헌 “‘남한산성’, 말이 칼보다 날카로운 영화”(인터뷰①)
이병헌(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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