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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조직 골드문의 이인자 ‘정청’ 황정민. 제대로 물을 만났다. 하얀 양복에 선글라스. 맨발에 기내용 슬리퍼. 등장부터 강렬하다. “씨바 브라더~” 입만 열면 욕이다. 배신자는 목을 단칼에 베어버릴 정도로 잔인하다. “우리 브라더는 그냥 이 형님만 딱 믿으면 돼야!” 친형제와 다름없는 부하 자성(이정재 분)을 대할 때에는 한없이 살갑다. 정청이 자성에게 건네는 짝퉁 선글라스는 웃기고,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짝퉁 시계는 짠하다. 캐릭터가 파닥파닥 살아 숨 쉰다. 정청을 연기한 배우가 황정민이어서 가능했다.
“관객들이 극장을 나설 때 정청의 ‘어이, 브라더’만 떠올려도 성공이다 했어요. 욕을 차지게, 거부감 없이 해내는 게 가장 큰 과제였죠.”
황정민은 정청을 “‘달콤한 인생’ 백사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말한다. 관객의 반응 역시 커졌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황정민은 “촬영 내내 신 나게 놀았다”고 했다. 대신 그 공은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돌렸다.
“정청은 튈 수밖에 없는 인물이에요. 연기하기도 쉽고요. 오히려 자성이 어렵죠. 제가 ‘부당거래’ 때 류승범과 유해진 사이에서 유사한 경험을 해봤잖아요. 티 나게 연기하면 연기한다 욕먹고, 반대로 안 하면 안 한다고 욕먹고. 그렇듯 어려운 역할을 (이)정재가 참 잘해줬어요. (최)민식이 형님은 중심을 잘 잡아줬고요. 제가 또 마음 내키는 대로 늘어놓으면 박훈정 감독이 이를 잘 추슬러 정리해주고. 한마디로 죽이 척척, 잘 맞았네요.”
황정민이 강조한 것 역시 ‘합(合)’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조화’. 다행히 어느 한 사람 뒤처지거나 튀지 않고 조화를 이뤄 모두가 빛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합이 뭉개져 빛을 발한 의외의 장면도 있다. 극 중 엘리베이터 액션 장면이 그것이다.
“찌르면 돌고 막고. 합이 정해져 있었어요. 정확하게 연습을 해서 동작이 딱딱 들어맞았죠. 리허설 할 때 얼마나 멋있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실제 촬영에 들어가니 구두에 가짜 피가 묻어 미끄러지면서 합이 뭉그러지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완전 개싸움이 됐죠. 하하. 그런데 이게 새로운 느낌이 나는 거예요.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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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황정민은 ‘브라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 개봉해 400만 관객을 모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속 “살아있네”라는 대사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하다. 극 중 자성처럼 강하게 신뢰하는 ‘브라더’가 있느냐 물었다. 황정민은 “지진희 등 연예인 야구단 ‘플레이보이즈’ 동료들부터 조승우까지. 내가 사랑하는 브라더들이죠. 이번에 작품을 함께한 정재도 마찬가지고. 민식이 형님도. 너무 많아요”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영화 ‘신세계’는 각기 다른 신세계를 꿈꾸는 세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배우 황정민이 꿈꾸는 ‘신세계’는 뜻밖에 소박했다. “비키니 입은 아가씨들이 가득한 해변이요? 누드 비치면 더 좋고요”라고 흡사 정청처럼 이야기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경주마처럼 달려요. 한 반짝 뒤로 물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죠. 모두가 LTE 예요. 사실 저도 서른 살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데뷔해 이후 10년간 미친 듯이 뛰었는데 마흔이 되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편하게 즐기자!’ 마음 먹으니 현장이 재밌어졌어요. 정청처럼 유해졌죠. 정청을 지금 나이에 연기해서 다행이에요. 만약 30대에 했더라면 지금처럼 다양한 느낌은 안 나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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