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남북이 하나가 된 순간...승패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 등록 2018-02-12 오전 5:00:00

    수정 2018-02-12 오전 5:00:00

[강릉=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0-8 완패. 실력 차는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남북이 하나가 됐다는 점이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가 열린 10일 강릉 관동하키센터. 단일팀 버스가 도착하기 전부터 경기장이 있는 관동대 캠퍼스 앞은 축제 분위기였다.

시민들은 한반도기를 흔들며 “단일팀 파이팅!”, “우리는 하나다!” 등을 외치며 열렬히 응원했다. 사물놀이패도 등장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은 “우리는 개성공단에 가고 싶다!”는 글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계속 외치기도 했다.

현장 매표소는 일찌감치 ‘전 좌석 매진’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번 동계올림픽 첫 매진이었다. 관람석이 6000석에 불과한 작은 경기장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은 경기 시작 1시간 30분여 전부터 길게 줄을 섰다. 경기장에 들어서기 위해선 삼엄한 검색대를 거쳐야 한다. 경기장 입장 자체가 더디게 진행되다 보니 줄이 200m가량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짜증을 내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인지 표정이 밝아 보였다.

아이스하키는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고령의 어르신들도 눈에 띄었다. 전쟁으로 고향을 잃고 남쪽에 내려온 실향민들이었다. 이분들은 대부분 한반도기를 들고 있었다.

손녀딸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는 실향민 김모(73·남) 씨는 “남북이 하나가 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돼 설레고 흥분된다”며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자기 실력을 잘 발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경기에 자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방남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과 함께 응원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남북 단일팀 경기를 직접 관전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북측 대표단은 경기 시작을 앞두고 단일팀 선수들의 소개가 이어지자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단일팀이 득점 찬스를 놓치자 문재인 대통령은 박수를 치며 아쉬움을 달랬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친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도 간간이 관중석에서 일어나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관중석에서는 북한 응원단의 일사불란한 응원이 눈길을 끌었다. 100여명의 북한 응원단은 경기장 곳곳에 자리를 잡아 노래와 구호로 응원 분위기를 이끌었다. 유니폼 색깔이 붉다 보니 관중석에서 더욱 눈에 잘 띄었다.

북한 응원단은 경기 중 ‘힘내라’, ‘조국 통일, ’우리는 하나다‘ 등 구호를 큰소리로 외치는가 하면 흥겨운 율동과 함께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 ’아리랑‘ 등을 부르며 응원전을 이어갔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무용단원 6명은 부채춤을 추면서 흥을 돋구었다.

북한 응원단이 응원전을 펼칠 때마다 시선은 그쪽으로 쏠렸다. 일부 관중은 직접 응원단 쪽으로 찾아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취재진들도 응원단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경기는 단일팀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선수들은 아쉬움 보다는 역사적인 경기를 마쳤다는 자부심과 흥분이 뚜렷했다. 관중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단일팀 선수들이 링크를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아낌없는 기립 박수를 보냈다.

선수들은 이 같은 응원 열기가 낯설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경기를 치러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무려 52개의 유효슈팅 가운데 44개를 막아낸 단일팀 주전 골리 신소정은 “좀 많이 시끄러워서 커뮤니케이션에 애를 먹었던 것 같다”며 “최대한 소리를 지르고 악을 많이 썼는데 다른 선수들도 거기에 대해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최고의 골리로 인정받는 스위스의 플로렌스 쉘링은 “신소정은 특별한 골리였다. 끔찍할 정도로 숱한 기회를 다 막아냈다”며 “오늘 밤 최고 선수는 신소정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북한 공격수 정수현은 한국 선수 박종아와 함께 자리한 기자회견에서 “나는 갈라진 둘보다 합쳐진 하나가 더 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회식에서 박종아와 함께 성화를 들고 성화대까지 올라갔던 정수현은 “북과 남이 함께 나아가면 체육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성과가 있을 것이다”며 “조국에서 경기하는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회 1차전을 마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12일 세계랭킹 5위 스웨덴과 2차전을 치른다. 단일팀은 올림픽 개막에 앞서 지난 4일 스웨덴과 평가전을 치러 1-3으로 패한 바 있다.

신소정은 “오늘보다 나아져야 한다. 분위기에 더 적응해야할 것 같다”며 “긴장과 압박을 풀고 우리 플레이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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