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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25일(한국시간)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에서 0-1로 패해 탈락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안컵에서 4강에도 오르지 못한 것은 2004년 중국 대회 이후 15년 만이었다.
실패 요인은 여러가지로 꼽을 수 있다. 에이스 손흥민(27·토트넘)의 컨디션 난조, 코칭스태프의 플랜B 전술 부재, 잇따른 골대 불운 등이 겹쳐 대표팀의 발목을 잡았다. 가장 큰 이유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었다. 특히 벤투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성용(30·뉴캐슬)의 전력 이탈이 결정적이었다. 기성용은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점유율 축구의 심장 같은 존재다. 미드필드에서 전방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패스를 찔러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특히 벤투호 공격의 핵심인 좌우 풀백의 공격 가담이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기성용이 날카로운 대각선 패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성용은 이번 대회에서 없었다. 필리핀과의 조별리그 1차전 전반에 오른쪽 햄스트링 근육 부상을 당해 일찍 교체됐다. 재활에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일찍 소속팀에 복귀했다.
기성용이 빠진 빈자리를 메운 주인공은 ‘젊은 피’ 황인범(23·대전)이었다. 황인범은 대회 기간 내내 기성용을 대신했다. 전방으로 연결하는 날카로운 침투패스가 여러차례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탓에 경기마다 기복이 심했다. 기성용이 보여줬던 노련함은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중요한 고비에서 패스 정확도가 떨어졌다.
아시안컵은 끝났다. 진짜 고민은 지금부터다. 오랫동안 대표팀을 이끌어온 고참급 선수들이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 2008년부터 태극마크를 달았던 구자철(30·아우크스부르크)은 대회를 마친 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원래 지난해 11월 호주 원정 평가전을 마치고 대표팀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벤투 감독의 만류로 아시안컵에 동행했다. 하지만 구자철은 컨디션 난조로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성용도 대표팀 은퇴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성용도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을 끝으로 은퇴하려 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 이번 대회까지 함께 했다. 기성용은 최근 자신의 SNS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끝났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겨 대표팀 은퇴를 암시했다.
‘포스트 기성용’을 찾는 것이 대표팀의 큰 숙제로 떠올랐다. 다행히 시간은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은 9월부터 시작된다. 최종예선은 내년에 가서야 시작된다.
기성용의 뒤를 이을 후보로 가장 먼저 떠오를 선수는 황인범이다. 황인범은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완벽하진 않지만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복귀해 최근 프랑스 1부리그 첫 골을 터뜨린 권창훈(25·디종)도 당장 대표팀의 부족한 부분을 해결해줄 자원이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지로나에서 뛰는 백승호(22)도 기성용의 후계자로 지켜봐야 할 선수다. 한국 선수로는 6번째로 스페인 1부리그에 데뷔한 백승호는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시절부터 주목받았던 그의 잠재력이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K리그로 눈을 돌리면 이번 아시안컵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진현(22·포항), 김준형(23·수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시안컵 대비 최종훈련에 참여했던 장윤호(23·전북)도 기대를 가져볼만한 재목이다. 벤투 감독은 최근 훈련에서 젊고 유망한 미드필더들을 잇따라 소집해 실험을 진행했다. 아시안컵 이전부터 기성용, 구자철 이후를 미리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대표팀은 오는 3월 다시 소집된다. 기성용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과연 벤투 감독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실행에 옮길지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