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한국계? 픽션이고 아전인수다

  • 등록 2015-04-28 오전 6:01:00

    수정 2015-04-28 오전 6:01:00

[이데일리 김인오 기자] 리디아 고(18)가 27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 클래식에서 정상에 올랐다. 한국 언론도 덩달아 흥분했다. ‘리디아 고 우승, 한국계 선수 시즌 7승 달성’, ‘LPGA에 불고 있는 코리안 파워’ 등등 시즌 9개 대회에서 7개를 휩쓸었다며 온갖 미사여구가 모두 동원됐다.

하지만 묘하다. 그 어떤 기사에도 리디아 고를 ‘뉴질랜드 선수’가 아닌 ‘한국계 선수’로 표기한다. 리디아 고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뉴질랜드 국적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래서 최근 급조된 신조어가 먼저 붙는다. 국어사전에서 ‘한국계’를 검색해봤다. 2003년에 처음 등록된 말로 ‘대한민국에 속하는 사람의 계통’이라고 적혀 있었다.

교포 선수들의 우승을 한국의 승리에 포함시켜도 별 문제 없을까. ‘그들’의 기록도 당연히 넣어야 된다는 쪽은 같은 한민족이라는 심정적인 이유를 내세운다. 너무나 자연스런 접근이라고 말한다. 반대 입장에서는 ‘그들’ 스스로 한국인임을 포기하는 행동이나 언사를 문제로 거세게 항의한다.

한때 ‘한국계’라는 표현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11년 10월 최나연(28·SK텔레콤)이 사임다비 말레이시아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을 때다. 당시 최나연은 LPGA 투어 한국계 100승 달성의 주인공으로 대서특필됐다. 1988년 구옥희가 첫 우승을 거둔 후 23년 만의 쾌거라며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다.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펄신 1승, 크리스티나 김 2승, 미셸 위 2승을 포함한 ‘반쪽 짜리 100승’이었다. 더군다나 이들의 우승 기록은 미국의 승수에도 잡혀 있어서 보는 이들을 찜찜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더 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한국계 선수들을 추앙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경우도 있었다. 2004년 10월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 출전한 크리스티나 김은 기자회견에서 “단 하루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후 1년 뒤 미국-유럽 골프 대항전인 솔하임컵에 출전한 그는 “나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이다”라고 말했다. 몸에 성조기를 도배한 채로. 같은 대회에 참가한 미셸 위도 성조기로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USA’를 외쳤다. 이는 자연스런 행동이다. 이들은 엄연한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모든 공식 기록에서 이들은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우리 시선은 내내 불편했다.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미교포 케빈 나는 어떤가. 27일 현재 케빈 나의 세계랭킹은 21위다. 오는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미국과 세계연합팀의 골프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 출전이 유력하다. 골프 선수들에게 있어 프레지던츠컵 출전은 ‘가문의 영광’이자 평생의 꿈이다. 출전이 확정되면 케빈 나는 성조기가 그려진 모자를 써야 한다. 이래저래 입방아에 오를 것이 뻔하다.

국적에 대한 개념은 세월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이미 다문화 사회로 바뀌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말도 일리 있다. 또 박수를 보내는데 인색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한국인의 정서대로 좋은 것은 그냥 좋게 받아들이면 그걸로 그만이다.

다만 기록은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기록은 엄중한 잣대를 대야 오해가 없다. 기록이라는 것은 계속 남게 되는데 그 기준이 흔들리면 무의미해진다. ‘한국계’라는 표현은 허구화(虛構化)된 픽션이며 심각한 아전인수(我田引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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