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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년이 지난 2018년. 파라오의 왕은 부활했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말이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인근 시골마을 나그리그 출신의 리버풀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26)의 별명은 ‘골 넣는 파라오’다. 이집트가 배출한 인물 가운데 파라오 이후 가장 유명한 주인공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살라는 올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32골을 터뜨려 득점왕에 올랐다. 32골은 2013~2014시즌 루이스 수아레스(당시 리버풀), 2007~2008시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당시 맨유), 1995~1996시즌 앨런 시어러(당시 뉴캐슬)의 최다골 기록 31골을 뛰어넘는 신기록이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 다른 대회까지 합치면 살라는 올시즌 43골을 기록했다. 소속팀 리버풀이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남겨두고 있어 살라의 골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살라는 파라오처럼 미이라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모습은 고대 이집트 최고 통치자와 꼭 닮았다.
3년 전만 해도 살라는 그저그런 선수였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첼시 유니폼을 입고 잉글랜드 무대에 도전했다. 흑역사였다. 2년 간 13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는데 그쳤다. 쫓겨나다시피 이탈리아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이미 한 차례 실패를 맛봤던 잉글랜드 무대. 살라의 성공 여부는 물음표였다. 하지만 시즌 개막과 함께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간결하지만 거침없는 돌파력, 그리고 자로 잰 듯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 잇따라 골망을 흔들었다.
리버풀은 비틀즈의 고향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리버풀 축구팬들은 ‘예스터데이’나 ‘헤이 주드’ 보다 ‘살라 송’을 훨씬 더 많이 불렀다. ‘오 살라~ 마네 마네’로 시작하는 ‘살라송’은 더아치스의 노랴 ‘슈가슈가’에서 멜로디를 가져왔다.
축구선수가 100m를 11초대에 달리면 스피드가 뛰어나다고 말한다. 살라는 100m를 10초대에 주파한다. 남자 100m 한국신기록(10초07)을 보유한 김국영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3년 전만 해도 살라는 빠르기만 한 선수였다. ‘혼자 뛰다 지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골 결정력 부족은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첼시 시절에 특히 그랬다.
충분한 출전 시간과 비례해 자신감은 한층 높아졌고 플레이는 여유가 생겼다. 마침 리버풀에서 호베르투 피르미누(브라질), 사디오 마네(세네갈) 등 최고의 동료들과 만났다. 피르미누와 마네 역시 스피드와 패싱 능력을 겸비해 살라와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살라는 축구를 하는 ‘인간’(人間)계에선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이제는 그의 시선은 ‘축구神(신)’계를 향하고 있다. 세계 축구를 양분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는 이미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살라는 이번 시즌을 통해 호날두·메시 수준에 근접했다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호날두와 메시가 지난 10년간 5번씩 양분했던 ‘발롱도르’(최고 축구선수에게 주는 상) 수상 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살라는 신의 반열에 오를지 여부를 가릴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있다. 살라가 이끄는 리버풀은 오는 27일 오전 3시45분(한국시간) 호날두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단판승부를 치른다. 이 경기는 살라 대 호날두의 대결로 더욱 관심을 모은다. 살라가 호날두의 콧대를 꺾고 리버풀을 우승으로 이끈다면 ‘축구神’계로 들어설 자격증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