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열풍②]류승완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4가지 메시지

  • 등록 2015-08-17 오전 7:40:00

    수정 2015-08-17 오전 8:18:39

‘베테랑’ 류승완 감독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통했다.

‘짝패’, ‘부당거래’, ‘베를린’ 등 너무 머리를 굴린 그 동안의 영화와 달리 그저 웃으며 재미있게만 찍자고 작정한 영화라고 했다. 실상을 알고보면 꼭 그렇지 않다. 류승완 감독은 그가 가진 소신, 철학, 가치관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은 척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에 대한 강조에 힘 쓰지도 않았다.

웃자고 만든 영화에 죽어라 숨긴 메시지가 있다. 개봉에 앞서 인터뷰에서 류 감독은 “강조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었고, 다만 관객 누군가 알아주고 공감해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는 ‘베테랑’ 후일담을 들려줬었다. 당시엔 스포일러가 될 우려가 있어 전하지 못한 류 감독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베테랑’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
△“이 세상 누구나 조태오 같은 갑(甲)이 될 수 있습니다.”

‘베테랑’엔 극악무도한 캐릭터, 조태오(유아인 분)가 나온다. 재벌가 아들로 그룹 후계자의 위치에 있다. 조태오에겐 세상 모든 일이 쉽다. 키우던 강아지를 죽여버리는 일도, 여자를 가지고 노는 일도, 사람을 죽이라 시키는 일도,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일도 모두 쉽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쳐죽일 놈”이라는 분노를 키우는 인물이다.

조태오는 왜 그렇게 험악해야 했을까. 그와 상대배우로 열연한 황정민 역시 류 감독에게 반문한 질문이다. “조태오, 이렇게 끝까지 보내는 게 최선이었습니까?” 류 감독은 수위가 조절된 인물이라고 했다. 영화라 극대화시킨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 세상 누구나 조태오와 같은 절대 갑(甲)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가 어렸을 때 본 책이 있었어요. SF단편소설이었는데, 우주를 폭발시킬 수 있는 우주선에 9세 꼬마가 타게 되는 내용이에요. 그 어린 아이에게 지구를 관리할 수 있는 권력이 모두 주어진 셈인데, 그런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상당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어요. 저 역시 ‘베테랑’을 통해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보고 싶었어요. 조태오는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어떤 고용주나 어떤 사장님, 그런 멀지 않은 곳에 조태오와 같은 이상한 갑들이 많습니다.”

‘베테랑’의 유아인 애인으로 등장하는 유인영.
△“‘우리’라는 개인은 언제까지 공동체에 희생돼야 하나요.”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서도철(황정민 분) 광역수사대 팀과 조태오 무리의 추격전. 조태오가 주최한 파티 현장을 덮치는 신이 나온다. 이때 총을 허공에 쏘는 장면이 두 차례 등장하는데, 극과 극의 반응이 주는 재미가 상당하다. 먼저는 광역수사대 팀이 파티가 열리는 건물 안에 들어서기 위해 경호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나온다. 격렬한 몸싸움은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제압된다. 총 소리에 놀라는 건 아주 당연한, 일반적인 경우다.

반면, 노래에 빠지고 술에 취하고 약에 홀린 사람들이 허우적대는 클럽 내부에서 울린 두 번째 총 소리는 달랐다. ‘팡!’하는 소리에 분위기는 고조됐고 정신을 잃은 사람들은 더욱 흥에 취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극명한 대비가 카타르시스를 안긴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이 신에도 류 감독의 사상이 담겼다.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은 다 조태오의 사람들이잖아요. 조태오와 친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잘 보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이른바 ‘조태오 집단’에 들고 싶은 사람들인 거죠. 요즘 사회가 젊은 친구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어떤 집단에 속해야 안정감을 갖고 만족감을 찾는 거죠. 그게 개인의 행복을 따지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 몸 뉘일 집, 동네에서 맥주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 어떤 일이든 내가 하는 것이라면 뿌듯해 할 줄 아는 자신감, 이런 게 좋은 거 아닐까요. 언제까지 ‘우리’라는 개인이 공동체에 희생돼야 할지…. 개인의 삶의 행복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얻어야 할 가치는 없는데 말이죠.”

‘베테랑’ 스틸컷.
△“기성세대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 얘기하고 싶었어요.”

영화의 말미, 카메라는 명동을 잡았다. 조태오와 서도철이 명동 거리에서 맨몸 액션으로 붙었다. 그 주변으로 시민들이 몰렸다. 모두 한 손엔 휴대전화를 들고 실시간으로 두 사람의 싸움을 담았다.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가 이 모든 광경을 기억하고 있다. 서도철과 조태오, 두 사람 외에 이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맞는 서도철과 때리는 조태오의 모습을 보며 시민들은 서도철은 선하고 조태오는 악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누구도 선뜻 나서진 않지만, 당하는 서도철을 위해 조태오가 도망갈 구석이 없도록 ‘인간병패’가 돼 준다. 서도철은 아직 조태오의 두 팔에 수갑을 채우지 못했지만 서민들에 의해 이미 ‘철컹철컹’이 완료된 순간이었다.

류 감독은 이 신에서 10~20대를 부르는 ‘젊은 세대’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더했다. 쉽게 말해, 요즘 세대의 잘못은 기성 세대의 잘못된 학습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세상살이에 무관심하고, 진정한 꿈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일을 좇고, 포기가 빠르다고 하죠. 요즘 세대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아요. 전 그들이 잘못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들을 손가락질 하는 어른들의 문제죠. 기성제대가 잘못한 거죠. 영화 속에서 시민들은 그들 안에 살아있는 최소한의 정의를 보여줍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나빠 보이는 조태오로부터 서도철을 보호하죠. 올바른 행동을 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모두. 다만 잘못 학습된 탓에 스스로를 볼 기회를 잃어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도 나도 사람이다. 넌 돈 있냐? 난 가오가 있다! 이렇게 서로를 같은 시각에서 보는 최소한의 용기도 가진 젊은이들인데, 어느 덧 눈치만 보며 크게 됐죠.”

‘베테랑’ 황정민 유아인.
△“희망의 끈을 놓아선 안 됩니다.”

류 감독에게 ‘베테랑’의 명대사를 꼽아달라 부탁하니 기자와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아마 영화를 본 관객에게도 범죄오락액션 장르를 본 것치고 왠지 모르게 마음에 와닿은 여운 진한 대사였을 터다.

“근데 말이야, 난 참 이상해. 그냥 ‘미안하다’ 한 마디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극중 서도철이 한 대사다. 조태오 회사의 하청업자가 죽은 일을 두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서도철은 무언가 숨기기 급급한 조태오 무리를 두고 이런 얘길 했다. 서도철의 시선에서 이 사건은 조태오가 사과하면 끝날 일이었다. 해당 하청업체에게 일을 준 우두머리로서 책임을 갖고 사과하고, 보상하는 수습 과정을 거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조태오는 그 일을 하지 않았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극중에서 서도철이 끝까지 맞서 싸우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포기하지 않은 인물로 그려진 이유다.

“제가 생각하기에 조태오라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사과였어요. 그게 조태오가 자기 일에 충실할 수 있는 방법이었죠.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정의는 매우 위험하지만, 이렇게 별 것 아니지만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해주는 것에서 정의가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일을 하는 거죠. 그 가치가 실현되려면 인간에 대한 애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봐요. 남을 사랑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사고가 완성되면 모두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겠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결국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든다는 믿음을 담고 싶기도 했어요. 요즘 어떤 뉴스를 봐도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지만,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는 마음 말이에요.”

▶ 관련기사 ◀
☞ 300명의 '톡투유' vs 499명의 '힐링'..같은 토크쇼, 다른 접근
☞ ['베테랑' 열풍①]1000만 향한 흥행 질주..12일의 기록
☞ ['베테랑' 열풍③]정웅인부터 마동석까지, 주연 잡은 역대급 조연
☞ '베테랑', 700만 관객 돌파 목전..파죽지세 흥행질주 놀랍다
☞ '개그콘서트' 최고의 1분은 '횃불투게더' 18.8%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미모가 더 빛나
  • 빠빠 빨간맛~♬
  • 이부진, 장미란과 '호호'
  • 홈런 신기록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