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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이 주류였던 세계 팝 시장에서 아시안 팝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 선봉이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한 K팝이다. 방탄소년단은 세계 최대 대중음악 시장으로 꼽히면서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높은 미국에서 대형 투어 콘서트를 통해 22만명(캐나다 포함)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미국 내 탄탄해진 팬덤을 확인시켰다. 방탄소년단은 이미 미국 빌보드의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200에서 1위 두차례,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톱10 한차례를 기록했다.
뒤이어 몬스타엑스, NCT 127, 블랙핑크 등이 진입장벽이 높았던 미국에서 주목을 받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은 방탄소년단으로 시작한 세계적인 K팝 열풍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블랙핑크는 지난 6월 발매한 첫 미니앨범 ‘스퀘어 업’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200에서 40위, 타이틀곡 ‘뚜두뚜두’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55위를 기록하며 K팝 걸그룹 최고 순위로 진입을 했다. NCT 127은 최근 발매한 첫 정규앨범 ‘Regular-Irregular’로 10월27일자 빌보드200 차트에 86위로 진입, 방탄소년단 이후 빌보드200 차트 K팝 보이그룹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몬스타엑스는 지난 7~8월 미국 7개 도시에서 월드투어 미국 공연을 진행하며 현지 팬들의 호응은 물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K팝을 비롯해 일본의 J팝, 중국의 C팝 등 아시안팝은 그 동안 세계 팝 시장의 변방에 머물렀다. 아시안 팝의 반격은 미국과 영국 중심이었던 세계 팝 시장의 지형 변화를 의미한다. 새로운 대중음악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출발점이 됐다는 분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19일 이데일리에 “최근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음악들을 들어보면 미국 본토 외에 스페니시, 인도 등 다양한 스타일과 컬래버레이션을 이룬 음악들을 듣는 게 어렵지 않다”며 “대중음악에서 신선함을 찾는 팬들의 갈망과 자국 내부의 요소들만으로는 더 이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미국 팝 시장의 상황이 맞물려 일어난 변화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대중음악에도 국경이 있었다. 미국은 팝, 프랑스는 샹송, 이탈리아는 칸소네, 중남미는 라틴팝 등 나라, 지역이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의 하나였다. 현재는 지역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고 장르는 혼합되는 양상이다. 샘플링 등 베이스가 되는 음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EDM이 유행을 하면서 과거 구분의 기준은 더욱 모호해졌다. 정덕현 평론가는 “기존 문화의 한계를 넘기 위해 비주류와 컬래버레이션이 대안이 됐고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세계 각지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K팝이 그 주요 소재의 하나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중문화 평론가인 이재원 한양대 겸임교수는 “K팝이 그 동안 주류 시장의 주위에서 머무르며 세계적인 흐름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변화를 거듭해온 게 성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발전을 거듭해온 K팝 업계의 노력과 글로벌 음악시장의 상황 변화, SNS 등을 통한 소통·홍보 방식의 변화가 종합적으로 맞물려 이뤄진 결과다.
강태규 대중문화 평론가는 “K팝을 비롯한 K컬처의 해외 공략은 철저하게 민간주도로 이뤄졌다. 현재 정부도 문화와 관련해서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정책 기조를 지키고 있다. 그게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기틀이 됐다”며 “문화의 전파는 각국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해야 하는 일이지 정부 주도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해외 시장에 대한 접근방식이 바뀌고 있는 일본이 어떤 성과를 이뤄가지는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