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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배구 코트에 등장하자마자 모두의 예상을 깨고 리그 최고의 리베로가 됐다. 그리고 세월은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가 데뷔했던 실업배구 ‘백구의 대제전’은 프로배구 ‘V리그’로 바뀐 지 오래다. 강산이 변한다는데 10년이 두 번이나 지났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그는 변치 않는 소나무처럼 코트 후방을 흔들림없이 지켰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포지션이지만 꾸준함은 그의 가장 큰 무기였다. 어느덧 통산 600경기 출전이라는 전무후무 대기록을 세웠다. 주인공은 ‘월드 리베로’ 여오현(45) 현대캐피탈 플레잉코치다.
여오현은 21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 프로배구 2022~23 도드람 V리그 5라운드 홈경기에 출전하면서 통산 600번째 경기에 나서는 대기록을 세웠다.
단지 출전 기록에 의미를 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이날 여오현은 리시브 효율 100%를 기록했다. 그에게 찾아온 서브를 완벽하게 리시브해 세터에게 올렸다. 중요한 순간 결정적 디그도 해내는 등 리베로로서 ‘본업’을 충실히 했다.
여오현이 선수로서 남긴 업적은 어마어마하다. 지금까지 정규시즌 1위 7번, 챔피언결정전 우승 9번을 경험했다. V리그 수비상도 4번이나 받았다. 2015~16시즌에는 사상 첫 수비 1만개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이날 2세트가 끝난 뒤 현대캐피탈은 여오현의 600경기 출전을 기념하는 특별행사를 가졌다. 현대캐피탈 선수는 물론 코트에서 경쟁하던 상대 팀 우리카드 선수들까지 아낌없는 박수로 ‘전설’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에서 여오현 플레잉코치와 오랜 기간 선수로 함께 활약했던 최태웅 감독은 “꽃다발을 선물하는 순간 살짝 눈물이 나더라. 몇 초 정도 힘들었다”며 “앞으로도 어린 선수들의 귀감이 되는 모범적인 선수로 오랫동안 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오현은 20년 넘게 선수로 건재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솔직히 운이 좋았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운동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수술대에 오르게 되는데 나는 수술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며 “운 좋게 좋은 감독님과 선수들을 만난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2~3년 전 허리 디스크가 터져 수술을 받을 뻔 했는데 그때도 재활로 치료를 마쳤다”면서 “부모님이 건강하게 낳아주신 덕분인 것 같고 나름 자기 관리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오현은 욕심이 많은 남자다. 그래서 포기도 모른다. 그는 “코트에서 뛰지 못하는 상황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좋은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욕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기는 했지만 포기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장담했다.
앞으로도 여오현의 시대는 계속된다. 적어도 팀에 도움이 될 때까지는 그렇다. 여오현은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할지 장담은 못하지만 팀이 필요하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것이다”고 깅조했다. 더불어 “솔직히 챔프전 우승 10번을 채우고 싶은 욕심도 있다”며 “리시브 하나라도 잘 받아 후배들이 우승을 경험하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