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앨리슨 리에게 배워야할 정유라

  • 등록 2016-10-25 오전 6:00:00

    수정 2016-10-25 오전 6:00:00

앨리슨 리
[이데일리 김인오 기자] 한 대학생이 있다. 분명히 입학은 했지만 수업 시간에는 도통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보고서는 제출기한을 넘기기 일쑤였고, 대학생이 쓴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부실했다.

질책해야 할 교수는 오히려 “잘했다”며 학점을 부여했다. 주변에서는 ‘특혜’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학교는 ‘우연’이라며 억울해했다. 정권 비선 실세라고 일컬어지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얘기다. 총장은 퇴진했고, 학교는 감사를 기다리고 있다. 130년 역사를 지닌 명문 사학 이화여자대학교에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또 다른 대학생이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이 학생은 남들보다 두 배의 노력으로 프로골퍼가 됐다. 1년 내내 이어지는 투어로 학교 생활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특별한 혜택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다만 공식 대회 일정에는 과제로 수업을 대신할 수 있었다. 미국 서부 유명대학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국계 앨리슨 리다. 이달 초 한국에서 열린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앨리슨 리는 대회를 마친 후 “경기장에서만 행복했다”는 묘한 얘기를 건넸다. 그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친구에게 강의 내용을 전달받고, 밤늦도록 공부를 해야 했다. 때로는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앨리슨 리는 학점을 따기 위해 남은 시즌 4개 대회를 포기했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부와 명예를 다 가진 남자 타이거 우즈는 명문 스탠퍼드대학교를 2학년 때 중퇴했다. 골프 역사를 바꿔놓을 정도의 대단한 업적을 세웠지만 학교만은 그를 ‘골프황제’가 아닌‘ 학생’으로 대했다. 우즈는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중퇴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반면 한국은 운동만 잘하면 소위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고, 졸업까지 큰 장애물이 없다. 일부 대학은 스포츠 스타를 유치하기 위한 한바탕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노력에 대한 보상과 동기 부여를 위해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어느새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모셔온’ 학생들은 수업은 물론이고 과제물에서도 자유를 보장받는다. 동료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만 ‘그들만의 세상’으로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때론 인터넷 동영상 강의로 대체하는 곳이 많아 외국인들 사이에 ‘사이버 대학’으로 의심받기도 하지만 웃어넘기면 그만이었다. 대학생 스포츠 스타들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운동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쉽게 바뀔 수는 없다.

최근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대학 교육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운동선수가 훈련이나 대회참석 등의 이유만으로 수업을 빠질 수 없다. 학교나 교수에 대한 ‘부정청탁’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칙 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다져져 관습화된 것이라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제2의 정유라 사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일그러진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학생과 학교가 모두 만족하는 학칙을 만들어야 함은 한치의 틀림이 없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전인교육’이란 말도 되새길 시점이다. 실용적인 기능과 애국심만을 강조하는 교육이 아닌 넓은 교양과 건전한 인격을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겨난 것이 전인교육이다. 최근 은퇴한 박세리는 후배들을 향해 “준비한 자만이 인생 2막을 화려하게 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 준비는 사교육이 아닌 학교 교육에서 출발한다. ‘운동 잘하는 학생’을 육성하는 것보다 사회구성원으로 바람직한 학생을 키워내는 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필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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