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부러움의 대상이 된 팬 문화, 골프강국 이끄는 또 다른 힘

  • 등록 2019-03-19 오전 6:00:00

    수정 2019-03-19 오전 6:00:00

지난해 9월 인천에서 열린 여자골프 국가대항전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한국을 응원하는 골프팬들. (사진=인터내셔널크라운 조직위원회)
[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1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TPC소그래스 17번홀. 케빈 나는 버디 퍼트를 하자마자 홀 안으로 떨어지자는 공을 잽싸게 꺼냈다. 이 동작을 본 타이거 우즈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잠시 후엔 자신도 퍼트 후 재빨리 몸을 움직여 홀 안으로 떨어지는 공을 꺼냈다.

이날 영상은 SNS를 타고 급속도로 번졌다. PGA 투어도 SNS에 이 영상을 올렸고, 여러 계정을 통해 퍼져 나가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보였다. 이날 ‘골프 황제’ 우즈의 ‘몸 개그’로 경기 해설자도 웃었고, 갤러리들도 박장대소했다.

골프 경기가 열리는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보면 한국 골프팬의 관전문화는 미국과 다르다는 걸 경험하다. 몇 시간씩 같은 자리에 앉아서 여러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골프팬들은 유독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향해 소리치고 사진 찍는다.

10여 년 전이다. 한 KLPGA 선수를 좋아하는 골퍼들이 모여 팬클럽을 결성했다. 대부분 40~50대의 남성들로 ‘삼촌팬’ 또는 ‘아저씨부대’로 불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꼴불견’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큰소리로 떠들 듯이 응원하는 무질서한 행동과 좋아하는 선수만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다 보니 경기를 방해하는 주범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처음에는 참고 경기하던 선수들도 나중에는 불만을 쏟아냈고, 결국 선수가 나서 팬클럽 해체를 권유했다.

몇년이 지나도 유별한 팬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팬심이 감정싸움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3년 전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선 우승을 다투던 한 선수의 팬클럽과 또 다른 선수의 아버지가 경기 중 큰소리로 말다툼했다.

최근 일부 선수와 일부 팬클럽에서 팬문화를 바꿔야 하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 다행스럽다. 박성현의 팬클럽이 대표적이다. 지난 8일 필리핀에서 열린 필리핀여자프로골프투어 더컨트리클럽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펼쳐져 현지 골프팬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박성현이 이 대회에 출전하면서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약 30명의 팬이 멀리 필리핀까지 몰려왔다. 박성현의 영문 머리글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맞춰 입었고, 우승을 기원하는 플래카드까지 제작해와 응원하는 모습은 현지 매체를 통해 고스란히 소개되기도 했다.

마지막 날 17번홀. 국내 팬문화를 감안한다면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박성현과 우승을 다투던 필리핀의 유카 사소가 티샷을 물에 빠뜨렸다. 순간 박성현을 응원하던 팬들은 탄식하며 아쉬워했다. 사소의 실수 때문에 박성현의 우승이 더 확실해졌지만, 경쟁자의 예상치 못한 실수를 보며 팬들은 안타까워했다. 경기장에서 함께 서 있는 선수는 경쟁자일 뿐이다. 좋아하는 선수만큼 경쟁자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행동은 팬 문화의 성숙한 변화였다.

최근 골프팬의 성숙해진 문화는 응원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박성현의 팬클럽은 2017년 2300만원의 성금을 모아 복지단체에 기부했다. 일본에서 활약 중인 이보미의 팬클럽 회원들도 2015년 연말 성금을 모아 중·고등학생 4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팬덤의 또 다른 순기능이다.

여자골프 국가대항전 UL인터내셔널의 키스 윌리엄스 사장은 한국에서 개최하는 이유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골프팬이 많은 나라”라고 소개한 바 있다. 한국 골프의 높아진 위상만큼 팬 문화는 골프 강국 한국을 이끄는 또 다른 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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