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평창의 시작부터 끝까지..김연아 항상 있었다

2011년 남아공 더반의 기적 만든 일등공신
피겨여왕에서 홍보대사로 전 세계 누비며 활동
개회식 성화 최종 점화로 시선 주목
  • 등록 2018-02-26 오전 6:00:00

    수정 2018-02-26 오전 11:27:42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최종 점화자인 김연아가 성화대 앞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평창특별취재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화려한 막을 내렸다. 92개국 2925명의 선수들은 모두 떠났지만 17일 동안 흘린 땀과 뜨거웠던 열기는 평창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등공신이 김연아다. ‘피겨 여왕’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그녀가 남긴 발자취는 또 다른 감동을 줬다.

▷더반을 감동을 준 김연아

2011년 7월 7일 0시 20분(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국제회의장에서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선 제29회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프랑스의 안시, 독일의 뮌헨과 함께 대한민국의 평창이 최종 개최 후보도시로 선택을 기다렸다.

95명의 IOC 위원이 투표에 참여했고, 자크 로케 IOC 위원장이 투표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회의장엔 침묵이 흘렀고, 로케 위원장의 발표에 관심이 집중됐다. 최종 결과는 63표를 획득한 평창이 25표를 얻은 뮌헨, 7표에 그친 안시를 제치고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그 순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유치에 나선 우리나라 관계자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3수 끝에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의 개최지로 선정되던 날 그 자리에 ‘피겨 여왕’ 김연아가 있었다.

김연아는 IOC 위원들 앞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연설자로 나섰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연단에 선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감동 깊은 연설을 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유창한 영어실력과 차분한 말투, 풍부한 표현력으로 더반을 사로잡았다.

평창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처음 도전을 시작한 건 2000년이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2000년 11월 무주와 평창을 동시에 후보도시로 나섰다. 평창은 첫 도전에서 아쉬움의 눈물을 삼켰다. 2003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열린 제115차 IOC 총회에서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캐나다에게 개최권을 빼앗겼다. 1차 투표에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었으나, 2차 결선 투표에서 평창은 53표를 얻었지만, 밴쿠버가 56표를 받아 개최지로 선정됐다.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단은 멈추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개최에 대한 뜻이 모아지기 시작했고, 2007년 7월 과테말라의 수도인 과테말라시에서 열린 IOC 총회에 집중했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가 유력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 러시아의 작을 마을 소치에게 또 다시 개최권을 빼앗겼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적극적인 유치활동을 펼친 반면 우리는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앞장섰던 탓에 막판 표를 빼앗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4년 체코에서와 마찬가지로 1차 투표에서는 가장 많은 득표에 성공했지만, 2차 투표에서 내줬다.

김연아가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휴전결의안’을 채택하는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 번째 도전에 나선 평창은 힘을 하나로 모았다. 그리고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피겨여왕’ 김연아가 전면에 나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연아와 함께 남아공 더반으로 날아가 유치작전에 힘을 보탰다.

김연아의 합류로 유치활동은 대성공을 이뤘다. 당시 남아공 현지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김연아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이날 연설에 나선 김연아에 대한 평가도 뜨거웠다. 남아공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행동 하나하나가 돋보였다고 보도했다. 이런 김연아의 활동은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유치활동에 나섰던 한 관계자는 “IOC 위원들이 김연아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느끼고 있다. 평창으로서는 천군만마나 다름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김연아의 연설은 인상적이었고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연아는 연설에서 “저는 동계스포츠에 대한 대한민국의 노력이 낳은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라며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려야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당시 현지 언론은 “김연아의 연설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김연아’가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연아의 활동은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김연아가 해냈고, 스포츠외교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로케 IOC 위원장이 “평창”을 외치는 순간 김연아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연아(오른쪽)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지난해 7월 ‘2018, 평창을 준비하는 사람들’ 행사에 참석해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호 홍보대사로 전 세계 누벼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이후 김연아는 1호 홍보대사로 더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은 동계스포츠의 불모지였다. 이런 이미지를 바꾼 주인공이 김연아다.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 2014년 소치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피겨 여왕’으로 활동했다. 소치 이후 김연아의 은퇴설이 흘러나왔다. 국민은 평창에서도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김연아는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17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일등공신으로 힘을 보탰던 김연아는 2014년 11월 다시 올림픽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김연아는 “동계 스포츠인이자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사명감을 보였다.

김연아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알리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날아갔다. 지난해 10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성화인수식에도 함께 했고,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를 찾아 평창동계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호소한 것도 김연아였다.

김연아는 약 4분 연설에서 “유엔총회에서 평화 증진에 있어 스포츠의 역할과 올림픽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문을 연 뒤 “올림픽 헌장은 ‘올림픽의 목적은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과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스포츠 경기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올림픽 정신이며, 스포츠의 힘을 보여주는 가능성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연설을 시작했다.

이어 “10살 때 남북한 선수들이 시드니 올림픽에 함께 들어가는 것을 보며 스포츠의 힘을 목격했다”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이 남북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전 세계와 인류를 위한 올림픽 평화 정신을 나눌 최고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호소했다.

김연아가 지난해 10월 31일 그리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인수식에서 성화램프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개회식 주인공에서 관중 속 조용한 응원까지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김연아는 개회식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또 한 번 주목받았다.

김연아는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최종 성화 점화자로 등장했다. 하얀 원피스에 스케이트를 신고 성화대 아래 마련된 작은 은반에서 우아한 몸짓을 뽐냈다.

김연아의 성화 최종 점화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고, 유치에 적잖은 힘을 보탰기에 성화 최종 점화자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남북 아이스하키 여자 대표팀 박종아-정수현이 성화대 앞까지 올라서자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타고 나타났다. 작은 빙판 위에서 화려한 연기를 펼친 김연아는 성화를 건네받으면서 박종아-정수현 선수의 손을 모아 함께 성화를 들었다. 김연아는 앞서 유엔 본부 연설 직후 “북한이 피겨 종목에서 출전권을 획득했는데 선수 시절 만나보지 못했다”면서 “북한 선수들이 평창에 꼭 참가해 경기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마침내 이뤘다.

김연아의 성화 점화에 외신들은 찬사를 보냈다. 피겨 전문 채널인 아이스네트워크는 “김연아의 스케이트가 성화를 환하게 비추었다. 위대한 점화”라고 감탄했다. 미국의 타임지 등은 “환상적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연아는 한국동계스포츠의 상징이다. 피겨 불모지인 한국 선수로서 11번의 세계신기록을 기록했고,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당시 최고 점수였던 228.56점을 받으며 우리나라에 첫 피겨 메달을 선물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판정 논란 속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의 가치는 그가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걸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그를 보고 자란 ‘연아 키즈’들은 어느새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됐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이후 김연아는 ‘여왕’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이 돼 선수들을 응원했다. 23일 여자 피겨 싱글 경기가 열리는 강릉 아이스아레나. 김연아가 검은색 점퍼 차림으로 관중석에 앉았다. 4년 전 올림픽 무대에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줬던 그는 평창에서 마음을 졸이며 선수들을 지켜봤다. 유명 인사 및 정치인들이 평창에 들러 메달을 딴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자랑하듯 떠들썩한 행동을 보인 것과 사뭇 대조를 보였다.

윤성빈이 한국의 올림픽 사상 처음 썰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던 순간에도 김연아는 경기를 관전하는 관중에게 방해가 될까 3차전 경기만 보고 조용히 자리를 뜨기도 했다. 김연아는 자신의 종목이었던 피겨 경기장에서 최다빈과 차준환을 관중석에서 응원했다. 최다빈 선수는 “롤 모델 김연아 선배의 응원 속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봅슬레이 경기와 민유라-겜린의 아이스댄스 경기장을 찾아 조용히 관전했다. 민유라는 경기 직후 “김연아 선수가 보고 있어서 너무 좋았다. 진짜 올 줄 몰랐다”라며 감격했다. 자신의 롤모델로 ‘김연아’를 꼽은 바 있는 이상호는 24일 스노보드 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딴 뒤 “김연아 선수의 자리에 조금 다가간 것 같아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올림픽 주인공은 선수’라는 걸 몸소 보여준 김연아였다.

김연아가 23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조용히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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