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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골키퍼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잉글랜드는 ‘젊은 신예’ 조던 픽포드(24·에버튼), 크로아티아는 ‘대기만성’ 다니엘 수바시치(34·AS모나코)의 공이 컸다.
잉글랜드와 크로아티아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각)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결승행 티켓을 놓고 한판 승부를 펼친다. 이 경기는 두 팀의 영웅인 골키퍼의 전쟁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다.
픽포드는 잉글랜드 내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지난해 10월에서야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번 월드컵 개막 전까지 A매치 출전이 3경기에 불과했다. 키도 185cm로 골키퍼치고는 단신이다.
픽포드는 지난 시즌 에버튼에서 주전으로 맹활약하며 처음 두각을 나타냈다. 그 전에는 6년간 2부리그에서 5부리그까지 오가며 임대 생활을 전전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 픽포드에게 주전 골키퍼를 맡기자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귀를 의심했다. 또 월드컵에서 ‘골키퍼 저주’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냈다.
전성기가 지났지만 큰 경기 경험이 많은 조 하트(31·웨스트햄)에게 골키퍼 장갑을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픽포드를 끝까지 믿었다.
픽포드가 새롭게 떠오른 ‘깜짝스타’라면 수바시치는 잡초처럼 버텨온 ‘백전노장’이다. 수바시치는 오랜 기간 크로아티아의 ‘넘버2’ 골키퍼에 머물렀다. 그의 앞에는 스티페 플레티코사(39)라는 부동의 주전이 늘 자리했다.
수바시치는 플레티코사가 대표팀에서 물러난 2014년 뒤늦게 주전이 됐다. 그의 나이 30살이었다. 이후 크로아티아 대표팀 골문을 든든히 지키는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은 놀랍다. 16강전 승부차기에서 덴마크 키커의 슈팅을 3차례나 막았다. 러시아와의 8강전에서도 1번 키커 표도르 스몰로프의 슈팅을 손으로 쳐내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수바시치가 아니었다면 크로아티아의 2연속 승부차기 승리는 절대 불가능했다.
수바시치는 16강전에서 친구 세스티크의 사진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청소년 대표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친구는 10년 전 축구 경기 도중 머리를 다쳐 사망했다.
친구에 대한 마음은 수바시치가 더욱 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담았다며 경고를 내렸지만 수바시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수바시치는 8강전 후반 막판 햄스트링 부상을 입고도 고통을 참고 끝까지 경기를 펼쳐 승리를 견인했다. 그가 얼마나 정신력이 강한 선수인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두 선수 모두 뛰어난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만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픽포드는 타고난 순발력과 반사신경이 일품이다. 스웨덴과의 8강전 때 골문 바로 앞에서 찬 마르쿠스 베리의 왼발 슈팅을 막아내는 장면은 픽포드의 탁월한 운동능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수바시치는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이 돋보인다. 승부차기 순간 가만히 서서 슈팅을 기다리는 다른 골키퍼와 달리 수바시치는 마치 춤을 추듯 흐느적 거리며 키커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번 4강전에서 잉글랜드가 이기면 1966년 우승 이후 52년 만에 결승에 오른다. 반면 크로아티아가 이기면 역사상 처음 결승 무대를 밟게 된다. 누가 이기건 역사적인 승리가 될 것이 틀림없다. 두 수문장의 어깨에 팀의 운명이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