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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손흥민은 의료진의 반복된 설득에 못 이겨 정밀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골절이었고 수술이 불가피했다. 뼈가 부러진 큰 부상을 당해 통증이 찾아와도 손흥민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경기 생각뿐이었다.
지난 5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 구장. 햄스트링(허벅지 안쪽 근육) 부상을 당했다던 손흥민이 깜짝 선발로 나와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그의 활약으로 토트넘은 강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무려 6-1로 크게 이겼다.
조제 무리뉴 토트넘 감독은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됐다. 지난달 28일 뉴캐슬전에서 손흥민이 전반전만 마치고 교체된 뒤 무리뉴 감독은 침울한 표정으로 “손흥민은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A매치 휴식기가 끝나는 10월 하반기에나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손흥민은 불과 8일 만에 돌아왔고 골폭풍을 몰아쳤다. 손흥민은 “난 분명히 다쳤고 걱정이 많았지만 내 햄스트링에 마법이 일어났다”고 말한 뒤 웃었다. 무리뉴 감독은 “손흥민의 정신력과 의료팀의 노력 등 모두가 힘을 합쳐 이뤄낸 결과다”며 “위기가 있었지만 그는 극복해냈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은 이날 경기를 마친 뒤 자신이 넣은 골보다 동료 해리 케인의 골을 도운 어시스트에 더 큰 의미를 뒀다. 그는 “맨유는 빅클럽이기 때문에 우리는 냉정하고 이타적이어야 했다”며 “그동안 케인이 내게 많은 어시스트를 해준 반면 나는 그러지 못해 부담이 있었는데 오늘 케인에게 어시스트를 해서 더 기뻤다”라고 말했다. 긴 설명 없이 손흥민이 감독과 동료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이 인터뷰가 잘 보여준다.
토트넘 입단 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손흥민은 유럽 빅리그(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이탈리아 세리에A·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총 98골을 기록했다.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분데스리가에서만 활약한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동률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2골을 추가하면서 유럽 빅리그 100골을 채웠고 차범근 감독도 확실히 넘어섰다.
손흥민은 2010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빅리그에 데뷔해 3년 동안 분데스리가 73경기에서 20골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레버쿠젠으로 옮긴 뒤 62경기에서 21골을 쓸어담았다. 2015년 8월 잉글랜드 토트넘으로 이적한 손흥민은 이날 맨유전 포함, 프리미어리그 164경기에서 59골을 넣었다
이제는 더 높은 대기록까지 바라보고 있다. 시즌 중 부상 없이 컨디션만 잘 유지한다면 득점왕 경쟁까지 뛰어들 수 있다. 손흥민은 현재 올 시즌 정규리그 4경기에서 6골을 터뜨려 득점 공동 선두에 나섰다. 시즌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꾸준히 이어간다면 자신의 한 시즌 최다인 14골(2016~17시즌) 기록을 넘어 EPL 득점왕까지 노려볼 만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대표팀 소집이 어렵다는 점은 오히려 손흥민에게 행운이다. 손흥민은 그동안 1년에 몇 차례씩 대표팀 경기 출전을 위해 장거리 비행을 왕복으로 소화했다. 하지만 올해는 A매치가 대거 연기된 상태. 여행 피로 없이 최상의 몸상태로 소속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손흥민이다. 앞으로 또 어떤 새 역사를 쓸지 그의 다음 경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