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 7개월 만에 해부해 본 '슈틸리케 리더십'

  • 등록 2015-04-14 오전 6:02:21

    수정 2015-04-14 오후 6:39:26

[이데일리 박종민 기자]

△ 울리 슈틸리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12년 전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며 국내 서점가를 강타한 후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주목받고 있는 책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저자 캔 블리차드는 “탁월한 리더십의 핵심은 권위가 아니라 영향력이다”고 역설했다.

파란 눈의 외국인 감독 울리 슈틸리케 부임 후 한국 축구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리더의 유형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목표지향적이고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갖춘 리더는 일에만 몰두해 ‘불통(不通)’하기 쉽다. 반대로 관계지향적이고 온화한 리더십을 소유한 리더는 자칫 줏대가 없어 급변하는 상황에 휘둘리기 쉽다.

슈틸리케 감독은 앞서 언급한 두 종류의 리더십을 묘하게 다 갖추고 있다. 그래서 한국 축구의 앞날은 밝다.

불과 7개월 전만 해도 한국 축구는 방향점을 잃고 표류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거둔 좌절의 성적표는 한국 축구를 ‘의리 축구’, ‘인맥 축구’로 낙인찍었다. 축구계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적임자를 물색했고 결국 슈틸리케가 낙점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퇴보하는 한국 축구의 머리를 제자리로 돌려놨다. 리더 한 명이 한 국가의 축구 수준을 정상궤도로 올려놓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늪축구’ 이른바 ‘머드타카(진흙+티키타카)’를 구사, 결과적으로 이기는 축구를 하고 있다. 이는 경기가 느리고 답답하게 전개돼도 결국에는 이기는 것을 뜻한다.

일각에서는 “축구는 22명이 90분간 공을 쫓다 결국에는 독일이 이기는 스포츠”라고 말한 잉글랜드 축구 전설 게리 리네커의 명언을 한국 축구에 대입하고 있다. 실용적인 축구를 구사한다고 해서 슈틸리케 감독은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에 빗댄 ‘다산(茶山) 슈틸리케’라는 별명도 얻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내외적으로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칭찬에 인색한 한국 축구의 병폐를 걷어내고 있다. A매치를 앞두고 보도되는 흔한 축구용어 중 하나는 ‘시프트(Shift)’다. 이는 선수의 역할을 기존에서 변경, 전환해 전술 시스템에 유연함과 변화를 주는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평가전 등에서 파격적인 시프트를 수차례 선보였다. 기성용, 손흥민, 박주호 등에게 건 ‘시프트’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효과를 냈다. 언론에서는 ‘파격’으로 칭했지만, 사실은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은 ‘실험’의 연속이었다. 결코 ‘무리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 차두리. (사진=대한축구협회)


전술, 선수 기용에서 차두리와 같은 베테랑 선수들의 제안을 일부 받아들인 것도 권위적인 국내 감독과는 차별화된 부분이다. ‘리스펙트(respect, 존경 또는 예우)’를 이끌어내면서 선수단을 장악하는 일은 감독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슈틸리케 감독은 외인(外人)이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선수들을 한 데 끌어모으고 축구를 외면하는 여론을 짧은 기간에 돌려놓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조직력 정비 기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을 27년 만의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에다 선수들의 협력, 한층 밝아진 대표팀 분위기 등 모든 부분들이 톱니바퀴처럼 물린 결과다. 리더로부터 시작한 긍정적인 기류는 대표팀은 물론 여론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서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스펙트’ 문화도 보여줬다. 바로 차두리의 대표팀 은퇴식을 통해서다. ‘최고’는 아니었으나 ‘최선’을 다한 선수 차두리에게 국민 대다수는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최고’라는 결과에만 집착했던 우리네 사회에 ‘최선’이라는 과정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1인자’만 존경받는 사회가 아닌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한 사람도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차두리는 으뜸가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은퇴식에서만큼은 세계 축구 전설들 못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차두리의 성대한 은퇴식을 흔쾌히 허락한 슈틸리케 감독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메시지를 한국 축구에 각인시켰다. 칭찬, 존경에 인색한 한국 문화의 그늘진 면을 조금이지만 씻어내는 데 일조한 셈이다.

차두리의 은퇴식을 본 후배 선수들은 수년 후 박수를 받으며 태극마크를 뗄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누구든 열심히 하면 떠나면서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그러한 믿음을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에 심었다.

한국 축구는 진정한 리더 한 명의 선임으로 성적은 물론, 품위까지 격상됐다. 아직 슈틸리케 감독의 마법은 끝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을 경험하는 것은 거스 히딩크 때처럼 한국 토양에 선진 축구의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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