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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독과점을 없애기 위해 제시된 대기업의 투자·제작·배급·상영의 수직계열화 해체가 과연 영화계의 다양성과 미래 성장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인지 영화계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발의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에서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 해체를 나눠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0월 발의된 영비법 개정안은 하나의 기업이 배급·상영을 겸업하지 못하게 하는, 즉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해체시키자는 게 골자다. 대기업은 리스크가 큰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면서 투자·배급업의 위험을, 수익을 보전할 수 있는 상영업으로 균형을 맞추는 수직계열화를 추구해왔다. 영비법 개정안은 제작·투자·배급·상영 등 전반을 대기업이 수직계열화로 통제해 특정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는 적폐를 심화시켰다는 판단에서 제기됐다.
최근 수직계열화 해체가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수직계열화가 스크린 독과점을 심화시킨 것은 사실이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영비법 개정안 관련 포럼에서 예술·독립영화 관계자들은 배급과 상영 분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최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CJ E&M 영화사업부문(CJ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배급한 ‘군함도’은 개봉 첫 날 2027개에서 개봉해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공격을 받았다. 2000여개의 스크린은 계열사인 CGV뿐 아니라 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의 ‘합작’으로 이뤄졌다. 결국 스크린 독과점은 수직계열화보다 수익의 극대화를 위한 상영업의 시장논리에 따른 것이다. ‘군함도’에 이목이 쏠린 탓에 비난은 피했지만 ‘택시운전사’도 1900여개 스크린에서 상영돼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택시운전사’를 투자배급 한 쇼박스는 극장을 가지지 않은 업체다.
이승호 KTB 상무는 “영화산업의 수익성이 지속된다면 CJ나 롯데를 대체할 세력이 나타나겠지만 투자·배급업에 대한 노하우와 충분한 자금력을 갖춘 대체세력이 바로 나타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대체세력이 양질의 자본이며 안정성 있게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자본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는 “대안 투자배급사가 생기기 전까지 제작사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며 새로운 자본의 유입을 기대했다. 정윤철 감독은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한 영화여도 CJ CGV에서 안 걸어준다”며 “극장이 갑이다 보니까 ‘몇 주 유지해 달라’ ‘교차상영 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가 먹히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 감독은 수직계열화로 인한 배급과 극장의 불균형 관계가 작품이 최소한의 평가 받을 기회도 얻지 못하게 한다고 문제를 삼았다.
대기업이 상영업을 포기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CGV의 경우 매출이 한 해 1조원이 넘는 회사다. CJ그룹이 CGV를 포기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실적으로 CGV를 인수할 수 있는 회사는 또 다른 대기업이 아니면 완다그룹 등 외국계 자본 밖에 없다. 결국 상영을 분리한다고 해서 스크린 독과점이 말끔하게 해결될지 미지수고, 도리어 국내 영화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 예로 언급되는 것이 1948년 메이저 스튜디오의 극장 소유를 금지한 미국의 파라마운트 판결이다. 파라마운트 판결은 발효 이후 TV의 보급 때문이기도 했지만 극장 관객 수 감소, 수 천개 극장의 폐업 등으로 영화산업의 위축을 가져왔다.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는 “영비법 개정안이 통과하더라도 현재의 대기업이 아닌 또 다른 메이저의 등장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투자·배급과 상영의 분리로는 스크린 독과점이 해결되지 않으니 스크린 상한제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진 엣나일필름 대표는 “스크린상한제는 단순히 스크린 수뿐만 아니라 상영 횟수, 상영 시간대, 좌석 수 등 고려한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