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호주오픈 4강 진출…亞 테니스 새 역사 쓰는 정현

  • 등록 2018-01-25 오전 7:08:16

    수정 2018-01-25 오전 8:45:59

정현.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정현(22·세계랭킹 58위·삼성증권)은 테니스 선수를 꿈꾸지 않았다. 잘 알려진대로 테니스 집안에서 태어났는데도 말이다. 아버지 정석진(52)씨는 실업팀 선수로 활약하다 은퇴 후 정현의 모교인 삼일공고 테니스부 감독을 지냈다. 정현의 형인 정홍(25)도 현재 테니스 선수로 활약 중이다.

정현이 테니스를 시작한 것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은 키가 188cm의 건장한 체격이지만 어릴 때 키는 또래에 비해 많이 작았다. 유망주로 주목받기 시작한 10대 중반까지 키가 그리 크지 않았다.

어린 시절, 정현은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생각이 깊었고 주변에서 나이에 비해 의젓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의 부모는 운동을 가르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현이 7세 되던 즈음 눈을 자주 깜빡거렸다. 어머니 김영미 씨는 병원을 찾았다가 약시 때문에 시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고도근시에 난시까지 겪었다. 안과 의사는 책을 읽는 것보다 초록색 코트를 바라보는 것이 낫다고 권유했다. 눈에 도움이 될까해서 겸사겸사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특수제작한 안경을 쓰고도 정현의 교정시력은 0.6 아래다. 정현은 경기 중에도 땀을 닦기 위해 안경을 수십번씩 썼다 벗었다 반복한다. 공교롭게 약시가 강점이 됐다. 시력이 좋지 않아 사물을 볼 때 일반인들보다 더 집중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바라보는 시력)이 발달했다.

기본적으로 테니스는 서양인들에 비해 선천적으로 팔·다리가 짧은 아시아 선수에게 불리한 스포츠다. 테니스의 오랜 역사 속에서 세계 정상 근처까지 도달한 아시아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정현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장애물을 넘어섰다. 어머니 김 씨가 퇴근길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정홍과 정현 형제가 나란히 벽면에 대고 테니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운동을 즐기고 있다’고 다행스러워했을 정도다. 대회에 다녀오면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정현이 반문할 정도였다.

테니스 전문가들은 정현의 강점으로 투핸드 백핸드와 빠른 발을 꼽는다. 사실 투핸드 백핸드 역시 한 손으로 백핸드를 넘기기에 힘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기술이었다. 서브 역시 팔과 복근에 의존하는 대신 체중을 이동하는 폼으로 바뀌면서 힘을 더 빼고 칠 수 있는 타법으로 교정했다.

정현을 조금 더 잘 아는 이들은 그의 가장 큰 무기를 ‘승부욕’이라 말한다. 정현은 2013년부터 자신을 전담 지도한 윤용일(45) 코치와 지난해 3월 결별했다. 2달 전 그리고르 디미트로프(3위·불가리아)와의 호주오픈 2회전 아깝게 패한 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잘 싸웠다’고 칭찬했다.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내용면에서 정현이 박수받을 만했다.

정작 정현은 분을 참지 못했다. 접전이 계속될수록 기술적인 한계를 느꼈다. 더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정현은 5년간 자신과 함께 한 윤용일 코치 대신 남아공 출신의 명코치 네빌 고드윈(43)과 손을 잡았다. 이 선택은 더 큰 도약을 위한 신의 한수가 됐다.

정현은 24일 호주오픈 남자단식 8강전에서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98위)을 세트스코어 3-0(3-0(6-4 7-6<7-5> 6-3)으로 완파했다. 이틀전 16강전에선 전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를 제압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정현이 1년 전 디미트로프와의 경기 후 그대로 만족해하고 멈췄다면 여전히 지금의 성공은 없었다.

정현은 부족한 신체적 한계와 환경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계 정상을 향해 한 발씩 다가서고 있다. 한국 테니스 역사는 정현의 의해 새로 쓰여지고 있다. 그랜드슬램 4강이라는 대위업을 이뤘지만 정현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정현의 별명은 테니스 선수로는 드물게 안경을 쓰고 경기한다고 해서 교수(The Professor)다. 또 젊은 나이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아 아이스맨(Iceman)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의 별명은 하나 추가됐다. AFP 통신은 “즈베레프와 조코비치를 연달아 제압한 ‘거물 사냥꾼’ 정현이 준결승에서도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며 ‘거물 사냥꾼(Giant killer)’이라고 불렀다.

정현은 8강전을 마친 뒤 코트 인터뷰에서 “아직 대회는 안끝났다. 계속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준결승 진출로 정현은 88만 호주달러(약 7억5600만원)의 상금을 확보했다. 페더러(2위·스위스)와 결승 진출을 놓고 겨룬다. 정현은 “금요일에 뵐게요”라는 말로 여전히 더 높은 목표를 꿈꾸고 있다. 꿈은 4강이 아닌 우승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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