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유아인이 그린 청춘 관찰 보고서(리뷰)

  • 등록 2018-05-17 오전 6:00:10

    수정 2018-05-17 오전 8:01:21

사진=파인하우스필름/CGV아트하우스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두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한 남자는 직업을 묻자 소설을 쓴다고 답한다. 실제론 무슨 소설을 써야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또 다른 남자는 당당한 말투와 여유로운 표정으로 “논다”고 말한다. 여자는 믿으면 실재한다고 생각하며 귤을 먹는 마임(mime)을 한다. 마냥 평범하지 않지만, 돌이켜 보면 주변에 있을 법한 청춘들이다. 지난 14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최초 공개된 영화 ‘버닝’은 이창동 감독의 말처럼 “요즘 세대의 무력과 분노”를 담아낸 미스터리다. 청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존 영화들이 희망적이거나 절망적이었다면, ‘버닝’은 ‘청춘영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인 종수(유아인 분)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해미는 종수에게 자신의 고양이를 맡기고 훌쩍 여행을 다녀온다. 돌아온 해미는 종수에게 아프리카에 만났다는 벤(스티븐 연)을 소개한다. 어느 날 종수의 집을 찾은 해미와 벤. 벤은 종수에게 은밀한 취미를 고백하고 그때부터 종수의 일상은 흔들린다.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다. 이창동 감독과 함께 각본을 집필한 오정미 작가의 지적대로 원작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nothing happens) 이야기다.

사진=파인하우스필름/CGV아트하우스
영화도 행간을 읽어야 한다. 일반적인 미스터리 장르로 소비하면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다. 노련한 노감독은 대신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과 관계의 빈자리를 파고들었다. ‘메타포’는 영화 안팎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음표가 147분을 꽉 채운다. 종수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는 벤의 ‘고백’을 변곡점 삼아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각 캐릭터에서 이 감독의 통찰력을 읽을 수 있다. 종수와 벤의 대비는 흥미롭다. 낡은 용달차와 값비싼 외제차가 대표적이다. 종수는 벤을 가리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돈은 많은 개츠비”라고 표현한다. 가난 등에서 시작돼 종수가 느끼는 무력감은 서서히 벤에 대한 분노로 발화한다. “죽는 건 무섭고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싶은” 해미도 인상적인 캐릭터다. 카드 값에 쫓기며 비좁은 방에 살지만, 성형수술을 하고 아프리카 여행을 간다. 순수함과 뻔뻔함의 경계에 서 있다.

사진=파인하우스필름/CGV아트하우스
이 영화의 백미는 세 인물이 종수의 집에 모인 신이다. 어스름한 시간 해미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춤을 춘다. 마치 삶의 의미를 묻듯. 영화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그레이트 헝거’를 연상시킨다. 오픈 세트에 자연광과 롱테이크로 완성된 장면이다. 곱씹게 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장인 정신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졌다. 하루 중 20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는 노을 신을 위해 한 달 가까이 공을 들였다.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영화 ‘베테랑’(2015)의 조태오처럼 강렬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유아인은 180도 다른 인물로 분했다. 구부정한 등과 자신감 없는 말투 등 새로운 유아인을 만날 수 있다. 스티븐 연은 미묘한 얼굴로 정체불명의 남자 벤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다만 한국어 대사는 발음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신인 전종서는 개성 있는 마스크로 오랜 잔상을 남긴다. 극중 유아인의 아버지로 등장한 최승호 MBC 사장은 신 스틸러다.

‘버닝’은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영화다. 유난히 칸 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이 감독이다. 이번에도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1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1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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