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스프링 두, 세계로···' 정두홍 무술감독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던 시골소년
'지.아이.조2'로 할리우드 진출
"스턴트맨, 몸과 마음이 아픈 직업..링컨 같은 개척자 될 것"
  • 등록 2013-03-25 오전 7:55:06

    수정 2013-03-25 오전 9:02:06

영화 ‘지.아이.조2’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정두홍 무술감독을 경기도 파주 헤이리 아트밸리에 있는 서울액션스쿨(SAS)에서 만났다.(사진=권욱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흑과 백의 닌자가 설산 꼭대기 수도원 좁은 복도에서 마주한다. 숙명의 맞대결. ‘백의의 악당’ 스톰 쉐도우(이병헌 분)는 순식간에 벽을 타고 날아오르며 날카로운 표창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오는 28일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개봉하는 영화 ‘지.아이.조2’의 한 장면이다. 이 놀라운 액션 뒤에 정두홍(47)이 있다. 스턴트맨이자 액션배우이고, 무술감독이면서 영화 제작자인 한국 액션의 대가. 이번 영화에는 이병헌의 스턴트 대역으로 참여했다.

“와이어도 안 당겼는데 어떻게 했어요?”. 그때 붙은 별명이 ‘인간 용수철’이란 뜻의 ‘스프링 두(Spring Doo)’다. 정 감독은 ‘크레이지 두(Crazy Doo)’로 불리기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격정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며 현장에 뛰어든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할리우드는 정두홍의 그런 ‘열정’을 좋아했다. 더 많은 기회를 안겼다. ‘지.아이.조2’로 인연을 맺은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또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레드2’에 스턴트 대역으로 참여했고,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더 라스트 나이츠’에는 무술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감성 액션’으로 할리우드 사로잡아

그를 만난 건 경기도 파주 헤이리 아트밸리에 있는 서울액션스쿨(SAS)에서다. 1998년 정두홍이 세운 국내 유일의 스턴트맨 사관학교. 정 감독은 오는 4월 17기 신입생을 맞을 준비와 새롭게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 ‘군도’ 액션 연구로 분주했다. ‘지.아이.조2’ 개봉을 앞두고 밀려드는 인터뷰도 요즘 주요 일과 중 하나다. “이병헌이 없으니 사람들이 저를 취재하네요. 인터뷰도 대역. 평생이 대역 인생이에요”라며 껄껄 웃었다.

말은 이렇듯 가볍게 해도 충무로에서 이미 그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 지 오래다. 1989년 ‘장군의 아들’ 스턴트 배우로 영화계에 입문해 ‘태양은 없다’·‘쉬리’(1999년), ‘반칙왕’(2000), ‘태극기 휘날리며’·‘역도산’(2004), ‘짝패’(2006),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부당거래’(2010) 등에 참여하며 토양이 미약한 한국 액션 영화의 맥을 이어왔다. 올해에는 지난 1월 개봉해 전국 700만 관객을 모은 ‘베를린’을 시작으로 ‘지.아이.조2’, ‘전설의 주먹’, ‘레드2’, ‘화이’까지 무려 다섯 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그가 없으면 한국에서 액션 영화를 못 만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선 달랐다. 영어도 못하는 낯선 동양인에 지나지 않았다. 초반에는 텃세가 심해 잠만 잤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바뀐 건 정두홍이 본격적으로 액션을 보인 이후다. 단 여덟 동작만으로 주위의 시선을 돌려놨다. 그는 “감정을 담은 액션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리 짜둔 합대로 연기하는데도 상대가 피할 때가 잦았어요. 진짜 때릴 듯이 손끝 하나, 발끝 하나에도 감정을 실어 연기하니 무서웠던 거죠. 그런 점이 할리우드에서 통했던 것 같아요.”

최근 2~3년간 정두홍 감독의 행보는 숨가쁘다. 미국에서 ‘지.아이.조2’ 촬영 이후 영국과 체코를 오가며 또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레드2’와 ‘더 라스트 나이츠’를 촬영했다. 귀국 이후에는 자신이 스턴트맨과 무술감독으로 참여한 영화 ‘베를린’과 ‘지.아이.조2’ ‘전설의 주먹’ 홍보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사진=권욱 기자)
한국 액션 강하지만 다양성 부족해

한국의 액션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강하지만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1960~70년대에는 한국에도 무술, 무협영화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액션영화가 만들어지질 않으니 황정리, 왕호 같은 액션 스타들이 홍콩으로 건너가 우리 무술을 전파하게 된 거예요. 그들은 한국의 무술을 결합해 발차기가 약한 단점을 보완했지만, 우리는 액션의 대가 그대로 끊겨버렸어요. 그러니 만날 칼로 찌르고 야구 방망이로 때리는 수밖에요.”

그럼에도 그는 한국 액션의 미래를 낙관한다. 한국인 특유의 ‘열정’을 믿기 때문이다. 정 감독 자신도 그런 열정 하나로 거칠고 삭막한 바닥에서 24년을 버텼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판을 바꿀 것”

정 감독은 누군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으면 “나는 꿈이 없었다”고 말한다. 작은 시골 마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꿈을 꾼다는 것은 사치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목표를 갖게 된 건 고등학교 때 마을 태권도장에 다니면서부터다. 현 이각수 세계종합격투기연맹 사무총장이 과거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무료로 태권도를 가르쳐준 은인이다. 정두홍은 그런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지금도 서울액션스쿨의 신입생들에게 무료로 무술을 가르치고 있다. 배우 박성웅, 정석원, ‘내가 살인범이다’를 연출한 정병길 감독 등이 이곳을 거쳐 갔다.

정두홍은 “작은 꿈(할리우드 진출)은 이뤘으나, 큰 꿈은 아직”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에 액션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러기 위해선 액션영화와 액션스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그는 액션계 대선배로서 스턴트맨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도 앞장서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판을 바꾸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믿는다.

“처음 이 바닥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치는대로 ‘으악’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고 해서 ‘방망이들’ ‘으악새’라고 불렀어요.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도 생계 보장이 안 될 정도로 보수는 형편없었죠. 오죽하면 말 값보다도 싸다고 할까요. 너무 아픈 직업이에요.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기고. 그 고통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것보다 더 아픈 건 마음이에요. 이 일을 하면서 너무 많은 동료들을 잃었어요. 그들 몫까지 열심히 싸울 겁니다.”

그는 닮고 싶은 인물로 에이브러햄 링컨을 꼽았다. 미국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한 링컨처럼 척박한 국내 액션시장에 개척자가 되겠다고 했다. 무술감독 정두홍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정 감독은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라고 말한다. 척박한 국내 액션시장에 링컨과 같은 개척자가 되겠다고 했다.(사진=권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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