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의 커피 이야기] 로부스타 커피 이해하기

  • 등록 2015-05-30 오전 6:54:41

    수정 2015-05-30 오전 6:54:41

핸드드립 커피
[이데일리 스타in 연예팀] 과거 오래된 일이다. 유명하다고 하는 한 호텔에서 손님과 식사를 마치고 난 후 후식으로 커피를 주문해 마셨다. 음식은 전체적으로 무난했으나 후식으로 나온 커피가 앞서 먹은 전체 음식을 망쳐버릴 정도로 별로였다.

난 식사를 마친 후 조용히 직원에게 다가가 혹 무슨 커피를 쓰는 지 물어보았다. 직원은 바리스타를 직접 데려와 소개해 주었다. 내가 다시 커피에 대해 묻기도 전에 바리스타는 나를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장소로 데리고 갔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자랑하는 듯 보여주며 이 머신으로 추출한다고 말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그의 말처럼 훌륭했다. 바리스타들은 누구나 알고 있고 사용하고 싶은 3천만 원대의 머신이었다. 나는 다시 그에게 에스프레소 머신 말고 커피가 어떤 종류를 쓰고 있냐고 물었다. 난 덧붙여 혹 커피에 로부스타가 블랜딩 되었냐고 물었다.

그는 매우 자신감 있게 로부스타가 30% 블랜딩 된 이탈리아 정통의 커피라고 강조했다. 난 손님이 기다릴까봐 별다른 언급 없이 성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로부스타는 코페아 카네포라(Coffea Canephora)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본래 코페아 카네포라의 대표 품종이지만, 로부스타란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로부스타는 19세기 중엽 아프리카 콩고(Congo)에서 발견되었으며, 해발 700∼800m 이하의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재배되며 적정 강수량은 2,000~3,000mm로 알려져 있다.

어떤 이들은 로부스타가 향이 강하지 않아 블랜딩에 용이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어떤 백과사전에서도 향미가 강하지 않다고 적혀 있는 것도 있다. 로부스타는 향이나 향미가 다양하거나 복합적이지 않은 것이지 향이나 향미가 강하지 않은 커피가 아니다.

혹자는 로부스타 커피를 가지고 블랜딩 되었을 때 그만의 독특한 맛과 향이 나오며 바디(body)를 살려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강한 향 때문에 로부스타가 우유에 묻히지 않고 커피의 향미를 살려 훌륭한 커피 음료(beverage)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라비카의 훌륭한 스페셜티 중에는 다크로스팅을 하지 않아도 우유의 향미를 밀어내고 올라오는 카페라떼 음료를 만들 수 있다.

로부스타의 향기는 부정적 측면에서 독특한 향이 너무 강하고 단조로워서 대부분 블랜딩에 20%정도만 넣어도 그 티가 확 난다. 로부스타의 향에 대해 폐타이어의 냄새나 일반 고무냄새 또는 보리차나 옥수수차의 냄새가 난다고들 말하는 이들도 있다.

때문에 다양한 향과 맛을 지닌 좋은 스페셜티 아라비카 빈이 있다면 여기에 굳이 좋지 않은 향이 강한 로부스타를 넣어 좋은 향들을 죽일 이유가 없다. 결국 로부스타를 넣어 블랜딩한 커피의 경우 아라비카도 지극히 커머셜 빈을 넣어 블랜딩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로부스타는 남미도 소수 있긴 하지만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쪽에서 주로 많이 생산한다.

그럼 왜 유럽에서는 과거에 로부스타 커피를 블랜딩에 넣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측면에서 가설들이 있다. 첫째는 아라비카 커피는 과거 병충해로부터의 관리가 현대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에 수확하기 편한 로부스타를 꾸준히 이용하였다. 둘째는 해상, 항공 등의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아 육로로 용이한 동남아시아 주변국들의 로부스타 커피를 유럽에서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셋째는 제국주의 시대 때 식민지 국가들이 생산한 로부스타 커피를 침략국가에서는 식민지 관리 차원에서 상호 관계를 위해 사용해 줘야 했다.

로부스타 커피가 모두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품질 좋은 로부스타 커피 중에는 아라비카 커머셜보다 비싼 것도 있다. 그리고 가격의 가치로만 환산할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한다. 인도네시아에 출장 갔을 때 일이다. 어느 한 시골 마을을 지나가다 구멍이 여기저기 뚫리고 외부에 녹이 많이 낀 드럼통에 모터를 달아 로스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지켜보게 되었다.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그 중 한명이 다가와 아주 진하게 다크 로스팅한 로부스타 커피에 연유를 듬뿍 넣어 한잔 내밀었다. 몇 시간 째 오지를 걷고 있어 다리가 퉁퉁 부어 있는 나에게 그 때 한 잔의 커피는 모든 피로를 잊게 해주는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단지 화학적으로 로부스타 커피가 아라비카에 비해 카페인 성분이 더 높아 나의 피로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이 전달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걸 받고 다 마신 후 옆에 있는 가이드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가슴 한구석을 먹먹하게 만든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체지역이나 자바 등지에서 훌륭한 아라비카 종의 커피들이 생산되지만 현지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아라비카 빈들은 생계를 위해 거의 수출하게 되고 이들이 마시는 커피는 깨지고 부셔진 로부스타 커피들”이라는 말이었다.

좋은 품질의 아라비카 커피를 자신들이 생산하고도 그것을 마실 수 없는 그들 앞에서 뭔가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마시지 못하는 아라비카 커피를 두고 마치 로부스타가 들어간 커피가 이태리 커피의 정통이기 때문에, 혹은 우유가 들어 간 음료에는 꼭 로부스타가 브랜딩 된 커피를 써야 하느니 라는 이야기들이 상업화의 스토리 속에서 더 이상 일반화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어찌되어 건 현재 로부스타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많이 이용되거나 인스턴트 커피에 주로 이용된다. 가끔 저가 항공을 타고 해외로 나갈 때면 로부스타가 블랜딩 된 커피를 만나기도 한다. 때문에 업장에서는 높은 단가를 낮추기 위해 로부스타 블랜딩 커피를 이용한다면 이해되지만 로부스타 블랜딩 커피를 ‘최고’의 커피로 오해하고 사용하거나 마신다면 최고의 커피를 찾는 길은 좀 더 요원해질 것이다.

△글=김정욱 現 딸깍발이 코퍼레이션 대표. 現 커피비평가협회 한국본부장.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베스트 컵 콘테스트 심사위원(2015 B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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