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에 성희롱 예방 수칙 포함”…‘미투’ 그후 방송가

  • 등록 2018-03-08 오전 6:10:00

    수정 2018-03-08 오전 6:10:00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조재현과 조민기(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 드라마 업계 종사자인 A감독은 최근 진땀을 흘렸다. 쉬는 시간 촬영장에서 ‘미투 운동’ 관련 뉴스가 화제가 됐다. 교수인 중견 배우가 여성 제자에게 휴대전화로 낯 뜨거운 메시지를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후배들의 분노 섞인 대화를 엿듣던 A감독은 막내인 여성 스태프 B씨에게 “어떤 메시지인지 한번 읽어봐라”고 말했다. B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A감독으로선 평소처럼 짓궂은 농담이었다. 말 없고 온순한 B씨라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이날은 달랐다. “저도 ‘미투 운동’(me too) 참여해도 될까요?” 다른 후배들까지 동조했다. 웃는 얼굴로 놀리는 투였지만 대본에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 수칙을 펼쳐 보였다. A감독은 결국 “그런 뜻은 없었다”며 사과했다.

성폭력 고발 캠페인인 ‘미투(me too) 운동’이 방송가를 바꾸고 있다. 제작자·PD·스태프들 사이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확실히 달라졌다. 괜한 오해가 없도록 스스로 조심하자는 분위기”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예가 MBC다. 지난 연말부터 드라마 시나리오 대본에 ‘촬영 현장 성희롱 예방 가이드’를 싣도록 하고 있다. 해당 가이드를 살펴보면 “성희롱은 문제 있는 개인이 아닌 조직 문화로 인해 발생한다”면서 성희롱 예방을 위한 생활 수칙, 피해자·행위자·동료를 위한 매뉴얼 등을 안내하고 있다. “성희롱과 친밀감을 구분한다”, “고정된 성역할과 나이를 강조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등 구체적이다. 국가인권위, 민우회 등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대한 상담 전화 번호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드라마 PD가 출연자의 여성 스태프를 성추행한 사건에 대한 후속조치에서 시작됐다. 가해자는 여성 스태프를 불러 모아 사과문을 읽은 후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비록 사후 약방문이지만 경각심 차원에서 유의미하단 평가다.

취지에 공감한 SBS는 올 초부터 ‘드라마 제작 촬영 수칙 안내’이란 제목의 안내문을 드라마 책대본 첫 장에 넣고 있다. 성희롱 예방은 물론 촬영장 안전 수칙, 고충 상담 담당자 연락처 등이 포함돼 있다. tvN은 최근 유사한 안내문을 시나리오 대본에 삽입했다.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던 조재현과 오달수 모두 tvN 드라마에 출연 중이거나 출연을 앞두고 있었다. 모두 하차를 결정했다. 이후 책대본에 안내문이 등장했다. 아직까진 개별 드라마 차원이다. 21일 첫 방송하는 새 수목 미니시리즈 ‘나의 아저씨’ 시나리오 대본에는 없지만, 26일 첫 방송하는 새 월화 미니시리즈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포함돼 있다. “전사적인 차원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KBS와 종편 등 그 외 채널도 이 같은 안내문 추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책대본 ‘성희롱 예방 수칙’ 일부.
연일 터져 나오는 폭로로 방송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조민기는 첫방송을 1주일 앞두고 OCN 토일 미니시리즈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하차했다. 조재현과 오달수도 마찬가지였다. 불똥은 제작진에 튀었다. 대본을 급히 수정하거나 후임 배우를 기용해 재촬영을 하는 등 뒷수습은 제작진의 몫이 됐다.

이 사태는 다른 드라마 제작 현장에도 영향을 줬다. 현재 캐스팅을 진행 중인 한 방송국 PD는 “새로운 폭로글이 나올 때마다 연관 있는 배우는 아닌지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한다. 캐스팅에 더욱 신중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전에는 캐스팅에 있어 연기력이나 외적인 이미지, 개런티 등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요즘엔 배우를 둘러싼 소문이나 평판도 확인하고 있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꺼려진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배우들에게 성희롱 예방 교육 실시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매니지먼트도 생겨났다. 20~30대 주연급 배우가 다수 속한 한 매니지먼트 대표는 “사실상 프리랜서인 배우들은 이런 교육을 받을 환경이나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당연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일깨우는 차원에서 간단한 교육이나 안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사 관계자는 “‘미투 운동’ 이후 불필요한 술자리가 줄어들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면서 “그렇지만 안내문을 넣는 것처럼 사소하지만 작은 변화들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꾸준히 쌓여나가길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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