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의 톺아보기]웰메이드의 역설..'쪽대본 저격수'가 필요해

  • 등록 2015-02-28 오전 9:01:01

    수정 2015-02-28 오전 9:01:01

‘풍문으로 들었소’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완성된 한 권의 책이 아닌 한 쪽 한 쪽으로 된 일부의 A4용지로 전달되는 대본. 이른바 쪽대본은 우리나라 드라마 촬영 시스템을 설명해주는 한 마디로 종종 등장한다. 촬영 중 전달되는 일부의 대본, 여기에 맞춰 숙지돼야 하는 연기, 이 모든 걸 급하게 담아내야 하는 카메라. 드라마 촬영장 분위기가 생방송에 비유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2,3년 전만해도 이러한 드라마 제작 시스템은 완성도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화면엔 옥에 티가 발견되기 일쑤였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설득력이 부족한 캐릭터에 시청자는 등을 돌렸다. 최악의 경우엔 방송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결방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위기의 현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새삼 높아지는 건 새로운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본 완성에 시간이 쫓기는 작가, 캐릭터 연구에 시간이 부족한 배우, 제한된 시간 내에 빠듯하게 촬영해야 하는 스태프. 모두가 힘든 이 상황에서 ‘웰메이드’를 이끌어내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연기 좀 한다’는 베테랑 배우가 ‘쪽대본 저격수’로 나서고, 스크린 활동이 잦은 스타들이 ‘미드(미국 드라마)의 꿈’을 꾸는 현실은 과연 개선될 수 있을까.

‘펀치’ 포스터.
△‘쪽대본’의 역설

최근 종방된 SBS 드라마 ‘펀치’. 마지막 회에서 방송 사고가 터졌다. 종방연에 모인 배우들과 스태프가 마지막 회를 함께 보고 있었다. 몇몇 관계자에 따르면 ‘펀치’의 연출을 맡은 이명우 PD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아쉬움의 감정도 들었을터다. 시청률 1위, 호평 세례 속에 끝날 수 있는 드라마에 흠집이 났으니 말이다.

어떤 이들은 다른 얘기를 내놓기도 했다. ‘펀치’가 어떻게 촬영됐는지 지켜봤다면, 이 정도로 끝난 상황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촬영 중반부에 접어들며 쪽대본이 나오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향할 수록 촬영된 테이프 역시 쪼개고 쪼개진 채로 편집실에 배달됐다고. ‘펀치’의 대사 한 줄에 시청자가 감동하고, 배경음악과 장면 하나하나에서 ‘웰메이드의 여운’을 남긴 현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졌다는 설명이다.

사실 ‘펀치’ 후속으로 편성돼 방송 중인 ‘풍문으로 들었소’도 상황이 좋지는 않다. JTBC ‘밀회’의 안판석 PD와 정성주 작가가 재회한 작품으로 화제가 된 ‘풍문으로 들었소’는 캐스팅에도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대중에게도 관심사가 됐던 이 작품은 ‘펀치’ 후속작으로 편성이 확정된 후에도 캐스팅 라인업을 제대로 갖추질 못했다. 드라마의 중심을 잡을 주연 배우급 캐스팅에 난항이 있었고 그 배경 중 하나로 대본 한 권이 없는 상황이 꼽히기도 했다. 아무리 작품성으로 인정 받는 제작진이라해도, 선뜻 출연을 결정하기가 어려웠던 것. 이 때문인지 ‘풍문으로 들었소’는 뚜껑을 열기도 전에 흥행 기운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결과는 어떤가. 첫회부터 나쁘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펀치’ 마지막 회의 절반에 그친 시청률이었지만 호평이 쏟아졌다. 안판석 PD만의 연출 스타일은 영화 못지 않은 감각을 뽐냈고 정성주 작가의 필력은 여전했다. 사실 촬영과 동시에 ‘생방송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장이지만, 시청자들은 ‘풍문으로 들었소’를 ‘웰메이드작(作)의 탄생’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
△‘미담’을 넘어 ‘전설’이 된 안타까운 이야기

“아무리 톨스토이라 해도 쪽대본은 싫다.” KBS2 수목 미니시리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 출연하는 배우 김혜자는 방송에 앞서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연기한 김혜자의 말이다. 3년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그가 오랜만에 현장에 적응한 과정 끝에 나온 말이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김인영 작가 입장에선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침일 수 있다.

20부작 드라마의 경우 방송 1,2회가 끝난 시점에서 절반 가까이 대본이 나온 건 이상적인 상황이다. 대부분의 평일 미니시리즈가 3,4회 대본이 완성된 즈음 첫 방송을 내보낸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현재 7,8부까지 대본이 나온 상황이다.

최근 종방된 KBS2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에 출연한 배우들은 강은경 작가에게 감사한다. 빠른 대본 덕에 캐릭터 연구가 깊이를 더했다. ‘웰메이드 가족극’이라는 호평은 당연한 결과였다. ‘가족끼리 왜이래’ 종방 후 관계자들 사이에선 영화 못지 않게 여유가 묻어났던 드라마 촬영 현장에 대한 미담을 쏟아내기도 했다.

지난해 화제가 된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미담을 넘어 전설이 된 경우다. 방송 중반부에 접어들었을 때 노희경 작가는 탈고했다. 이야기의 끝을 알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말과 행동엔 당장 다음 회의 내용 전개를 모르고 연기하는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감성이 담겼다. 조인성, 이광수, 공효진 등 출연진이 노희경 작가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가족끼리 왜이래’와 ‘괜찮아 사랑이야’
최근 한 영화 홍보를 위해 인터뷰로 만난 배우는 이런 얘기를 했다. “미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팬으로서 우리나라도 ‘미드 시스템’이 안착된다면 완성도 측면에서 더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텐데”라고. 스크린에서 주로 활동했던 배우들이 드라마를 본의 아니게 기피하게 되는 이유 역시 시스템의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최근 인기리에 종방한 드라마에 출연한 한 배우는 이런 얘기를 했다. “이 말도 안되는 촬영 현장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도록 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오히려 슬프게 느껴졌다”고. 옛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지만 ‘모로가도 서울이면 된다’는 말만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우스갯소리도 더했다.

한 외주제작사 제작 프로듀서는 “채널이 많아지면서 경쟁은 심화됐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시시때때로 바뀌며 콘텐츠를 판단하는 눈높이는 높아졌다”면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현장이 개선되기 위해선 작정한 듯 ‘저격수’가 되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고선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각각의 콘텐츠가 누군가와의 경쟁을 이겨야 하는 상대평가 구도에서 탈피할 수 있다면 사전 제작 시스템이 도입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개선의 의지는 충만하지만 현실적으로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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