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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52)의 첫마디는 그랬다. 알면 알수록 경이로운 인물. 잘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답이 보이질 않아 답답했고, 실존인물이지만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인물이라서 절망했다. 난세에 나라를 구한 국민적 영웅을 티끌만큼도 욕보여선 안 된다는 책임감은 그를 더욱 무겁게 짓눌렸다. 오죽하면 거꾸로 돌아서 앉은 이순신의 환영을 붙잡고 ‘제발 10분 만이라도 좋으니 시간을 내어달라’고 매달렸을까.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은 “불안감, 중압감이 상당했다”며 “절대적인 존재감 앞에 무력화되는 느낌이었다”고 영화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영화 ‘명량’은 1597년 임진왜란 6년,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임금은 그를 믿지 않고, 부하들은 두려움에 그를 배신한다. 그런 가운데 서서히 다가오는 일본의 수군. 영화는 이순신 장군 생애 가장 고통스럽고 어려웠을 시기에 카메라를 바짝 들이대는데 이순신을 연기해야 하는 최민식에게는 명량의 회오리바다만큼이나 격하게 요동쳤을 이순신의 복잡한 내면을 그려내는 일이 숙제로 주어졌다.
“그냥 허구라고 하면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순신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왕의 안위를 걱정하며 극단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군인, 신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실천해낸 ‘완벽한 사람’이죠. 그야말로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인간인데 모두가 아는 실존인물이잖아요. 어떤 심정, 어떤 눈빛, 어떤 목소리, 어떤 표정이었을지 미치도록 궁금했어요. 그런 점이 절 ‘지랄 같은’ 강박으로 내몰았죠.”
이 같은 어려움은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예감한 터였다. “잘돼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명량’을 거부할 수 없었던 건 메가폰을 든 김한민 감독의 소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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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읽어보라는 권유는 많이 받았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김훈 작가가 얼마나 묘사를 잘해놨겠어요. 이순신에 빠져 있을 때예요. 그걸 읽으면 나도 모르게 마치 내 것인 양 차용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죠.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 일이에요.”
이 시대에 이순신을 다시 조명하는 의미를 묻는 말에는 ‘무릇 장수된 자는 충을 좇아야 하고, 그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극 중 이순신의 대사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순신 장군도 말하지요. 천행이었다고. 그 천행은 이순신을 도와 나라를 구한 백성을 뜻하는 말이에요. 책상에 쌓인 먼지 같던 이들이 중요한 일을 해냅니다. 여기서 보이는 ‘민본’은 결국 요즘 시대로 말하면 민주주의 아니겠어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시대와 문화가 바뀌었어도 그 시절의 교훈과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지요.”
‘명량’은 순제작비만 150억 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올여름 하정우·강동원 주연의 ‘군도’, 손예진·김남길 주연의 ‘해적’, 김윤석과 박유천 등이 의기투합한 ‘해무’ 등과 경쟁한다. 이 가운데 ‘해무’를 제외한 세 편이 사극이다. ‘군도’가 현란한 액션으로, ‘해적’이 코믹한 웃음으로 재미를 더했다면, ‘명량’은 시종일관 묵직하게 이순신 장군의 고뇌에 집중한다. 해상전투 장면은 그 시절에 맞게 투박하며, 웃음이 터지는 장면은 단 한 순간도 없다.
그야말로 돌직구다. 화학조미료가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상업영화. 이는 ‘명량’의 최대 강점인 동시에 우려 점이기도 하다. 몸에 좋은 음식인 건 알겠는데 지나치게 건강식이랄까? 최민식은 이러한 우려에 “요즘 젊은 사람들 입맛에는 다소 안 맞을 수도 있겠다”라고 인정을 하면서도 “하지만 우리 영화에는 지금과 같은 작업 방식이 옳았다고 본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사진=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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