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 돌파한 `1987` 장준환 감독 “그 시절 부채감으로”

  • 등록 2018-01-10 오전 8:20:06

    수정 2018-01-11 오전 9:03:17

장준환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그 시절에 대한 부채감과 분노가 있었어요.”

장준환 감독이 개봉 12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1987’를 연출한 배경은 이랬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장 감독은 대학생 형, 누나들이 거리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서야 그 시절의 그 싸움이 민주화를 위한 운동임을 알게 됐고 자신도 함께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에 부채감을 느꼈다. 더불어 분노감도 일었다. 그것이 ‘1987’과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 시절은 우리 역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시기잖아요. 그런데도 그 시기를 들여다보지 않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일종의 분노가 일었어요. 나이를 먹고 아이가 있다 보니 우리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하나란 고민도 컸어요.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1987’에 끌렸던 것 같아요.”

장 감독은 그간 영화적 상상력과 재미가 풍부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외계인이라 믿는 자들에 맞서서 나 홀로 지구를 지키고자 한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지구를 지켜라’나 괴물로 길러진 한 소년의 복수를 그린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등 전작들은 사회적 통념을 깬 이야기였다. 그런 그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순간을 리얼리티가 중요한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어떻게 그려낼지 관심이 쏠렸다.

‘1987’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최루탄 사망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극 초반부터 영화는 관객을 울린다.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을 연기한 김종수가 눈 내리는 임진강에서 아들의 유해를 뿌리며 ‘왜 못 가노’라며 오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유해를 뿌리는 장면이 우리 영화의 첫 촬영이었어요. 임진강 얼음이 녹을까봐 부랴부랴 준비해서 갔는데 예고도 없이 눈이 내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처음에는 촬영을 못할까봐 저는 걱정을 했어요. 오히려 CG팀에서 ‘이게 몇 억 짜리 미술이냐’며 반기더군요. 찍고 나서 보니 CG팀의 말을 알겠더라고요. 그 장면은 하늘이 도왔습니다. 신기했습니다.”

하늘이 도운다고 하더라도 실존 인물과 실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한다는 건 장 감독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30년밖에 되지 않은 역사여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들이 있고, 직접 겪었기 때문에 그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분들도 있어서 아무래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면서 관객들과 이 이야기의 핵심을 공유하고 더불어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숙제였죠.”

특히 고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분들이 돌아가시는 장면을 촬영을 할 때에는 최대한 잔인하게 보이지 않으면서 슬픔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했어요. ‘이(고문을 하고 최루탄을 쏜) 사람들이 밉다’는 게 아니라 스물두 살밖에 안된 대학생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서…” 고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언급하면서 장 감독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끝까지 잊지 못했다.

장 감독이 ‘1987’을 연출하기로 했을 때는 전 정권에서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횡행했던 서슬 퍼런 시기였다. 부채감이었다고 하나 장 감독으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다. 그런 그에게 힘을 준 건 배우이자 감독이자 아내인 문소리였다.

“(문소리가) 같은 영화인이라서 그런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스스로도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죠. 아내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 결정을 묵묵히 지켜봐주고 결정에 대해서 격려해준 것에 대해서 고마웠습니다. 그때 아내의 웃는 얼굴이 생각나네요.”

이 영화의 미덕은 배역의 작고 큼이 없이 모두가 주인공이라는데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 주인공이라는 영화의 숨은 뜻이 배역에서도 묻어난다. 장 감독은 민감한 시기에 이 영화에 대한 뜻을 함께해준 배우들에게 고마워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마음과 힘을 보태줬습니다. 강동원씨는 작은 역이라도 하겠다고 했고요. 김윤석 선배님, 하정우씨 모든 배우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선뜻 출연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 마음이 아름다워보였습니다. 저희 영화에는 그런 미담들이 많아요.”

‘1987’은 고 박종철 열사가 열고 고 이한열 열사가 닫는다. 엔딩은 고 이한열 열사가 집회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것에 항의, 시청광장에 100만명의 시민이 운집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시청 광장의 목소리가 30년 후의 광화문 광장에도 통한 것일까. ‘1987’은 웃음을 뺀 진중한 접근에도 손익분기점인 400만명을 넘기고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8일까지 426만명을 동원했다. 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숙 여사와 함께 직접 영화를 관람했다. 문 대통령은 “영화를 보는 내내 울면서 뭉클한 마음으로 봤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울림이 컷던 대사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였다”며 “민주화 투쟁 시기에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인데 그것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감상을 전했다. 문 대통령 내외의 관람으로 더욱 힘을 받은 ‘1987’은 금주 중에 500만 관객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장준환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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