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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이 열리는 코스는 긴 러프로 악명이 높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깊은 러프에 빠지면 1~2타를 까먹어야 하는 일은 다반사다. 당혹한 선수들은 클럽으로 땅을 내리치면서 화를 낼 때도 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코스에 불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난코스를 정복하기 위해 해가 질 때까지 더 연습하고 대비한다.
지난 10월 28일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은 한국 남자골프투어의 수준을 조금이나마 끌어올린 대회이자 새로운 변화의 출발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스터스나 US오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펼쳐진 다른 대회에서 볼 수 없었던 코스 세팅과 관리 그리고 갤러리를 먼저 생각한 대회 운영은 남자골프투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대회 첫날 이태희는 파5의 10번홀에서 2타 만에 공을 홀에 집어넣는 앨버트로스를 기록했을 정도로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였다. 코리안투어의 기록이 집계된 1994년 이후 9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다. 그에 반해 같은 홀에서 김우찬과 김성호는 트리플보기를 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홀에서 이처럼 희비가 극명하게 갈린 건 잘 친 샷에 대한 확실한 보상과 실수에 대한 가혹한 대가의 차이였다. 성적에선 분명하게 희비가 엇갈렸지만, 경기를 끝낸 선수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제대로 실력을 시험해 볼 수 있었다”고 만족해했다.
꼭 큰돈을 들여야 좋은 대회를 치르는 건 아니다.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보여준 작은 변화는 국내 남자골프투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시도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됐고 조금만 노력하면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대회를 만들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