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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호주 빅토리아주 서틴스 비치 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ISPS 한다 빅오픈에서 7년 만에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박희영(33)이 2차 연장에서 친 버디 퍼트를 이 한 마디로 표현했다. 박희영은 이 버디에 성공, 최혜진과 3차 연장으로 승부를 끌고 갔다. 박희영에 이어 버디를 노린 유소연은 퍼트를 놓쳐 탈락했다.
박희영은 3차 연장에서도 같은 전략으로 경기했다. 페어웨이 왼쪽 끝으로 보내 다음 샷으로 온그린을 시도했다. 연장전에선 실수가 승부를 가를 수 있기에 무리하지 않았다. 18번은 파5 홀이지만, 거리가 짧아 아이언으로도 2온을 공략할 수 있다. 박희영은 더 욕심내지도 않았고 하던 대로 했다.
3차 연장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해 4차 연장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박희영의 선택은 바뀌지 않았다. 티샷은 여지없이 같은 장소로 날아갔다. 하지만, 최혜진의 공은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날아갔고 나무 아래 떨어졌다. 최혜진이 먼저 흔들렸다. 위기를 맞은 최혜진은 두 번째 샷에서도 실수를 했다. 실수는 계속 이어졌고, 결국 5타 만에 공을 그린 근처까지 보냈다. 박희영은 3타 만에 공을 그린에 올렸고, 버디를 놓쳤으나 파를 기록해 긴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약 7년의 기다림 끝에 통산 세 번째 우승은 그렇게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긴 끝에 박희영에게 찾아왔다. 2013년 메뉴라이프 파이낸셜 클래식 이후 통산 3번째 우승이었다.
20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박희영은 “어차피 다음 퍼트는 없다는 생각으로 강하게 친 게 버디가 됐다”며 “그 선택은 ‘신의 한수’였다”고 말했다.
15년 동안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았던 만큼 가족들은 박희영의 선택을 기다렸다.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박희영은 “부모님은 ‘힘들면 그만 둬도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딸로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도 다시 들었다”며 “그러던 시기에 남편의 조언은 다시 힘을 내게 했다”고 말했다. 박희영은 2018년 시즌을 끝낸 뒤 미국에서 일하는 남편 조주종 씨와 결혼했다. 남편은 박희영에겐 든든한 후원자였다.
박희영은 “남편은 골프를 모르지만 주말마다 골프장에 와서 운전을 해주고 갤러리를 하면서 내 곁을 지켜줬고 때로는 과거의 스윙 영상을 찾아서 보여주며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하길 늘 응원했다”며 “‘골프를 그만할까’라고 고민하던 순간 ‘시드를 잃고 등 떠밀려서 떠나는 것보다 정상에 있을 때 아름답게 떠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고 그 말을 듣고 다시 골프채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남편의 조언과 노력이 경기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위로와 격려의 따뜻한 말은 그 자체만으로 힘을 줬다.
다시 골프채를 들었을 때, 박희영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편안한 마음이었다. 성적을 떠나 골프를 하는 게 즐거웠고,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7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르는 순간, 박희영은 홀로 18번홀 그린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남편의 든든한 외조와 부모님을 향한 딸의 효심, 언니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동생의 응원이 더해진 결과였기에 더욱 뿌듯했고 의미가 컸다.
박희영은 “솔직히 10년 넘게 골프를 했으니 느슨해질 법도 했지만, 올해만큼은 다시 잘 해보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며 “우승 뒤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공항으로 마중 나오셨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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