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현미, 오늘 사망 1주기… '밤안개' 속으로 떠난 영원한 디바

  • 등록 2024-04-04 오전 8:04:53

    수정 2024-04-04 오전 8:04:53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원로가수 고(故) 현미가 세상을 떠난지 1년이 흘렀다.

현미는 지난해 4월 4일 세상을 떠났다. 팬클럽 회장 김씨가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고인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사망했다. 향년 85세.

현미는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이후 6.25 한국전쟁 당시 1·4 후퇴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한의 가족들을 만나는 모습은 많은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미8군 위문 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일정에 불참한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고, 1957년 현시스터즈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유명 작곡가이자 남편인 고(故) 이봉조의 곡을 받아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펼쳤다. 1962년에는 미국 재즈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냇 킹 콜 등이 부른 ‘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에 자신이 작사한 가사를 입혀 ‘밤안개’를 발표했다. 이 곡은 발표 당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현미를 톱스타 반열에 올려줬다. 1960년대 대표적인 여가수로 꼽힌 현미는 ‘떠날때는 말없이’, ‘무작정 좋았어요’, ‘애인’, ‘몽땅 내 사랑’, ‘바람’ 등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사랑받았다. 특히 한국형 재즈, 팝 풍을 선도하며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미는 2007년 데뷔 50주년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할 것”이라고 음악 활동에 의욕을 보였다.

현미의 가족은 연예계 로열패밀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미는 가수 노사연, 배우 한상진의 이모로 유명하다. ‘사랑은 유리 같은 것’으로 인기를 끈 원준희의 시어머니이기도 하다. 큰아들도 고니라는 이름으로 가수 데뷔를 했다.

현미의 장례식은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됐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현미 선생님께서는 가요계의 큰 별이다. 별이 진 것이 아니라 밤하늘에 여전히 빛나며 우리 후배들을 지켜보시리라 믿는다”며 “고인께서 치열한 삶을 통해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 영면에 드는 이 시점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자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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