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우의 새털 베이스볼]'나쁜 남자' 윤길현이 그리는 '착한 야구'

  • 등록 2015-07-25 오전 9:07:39

    수정 2015-07-25 오전 9:46:08

윤길현. 사진=SK 와이번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야구기자 한 지가 벌써 16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요. 제가 겪어 본 그 ‘사람’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잣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람의 기억은 모두 다르게 적히기 마련이니까요. 기사처럼 객관성을 애써 유지하려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느낀 바를 솔직하게 적어볼 생각 입니다. 그저 ‘새털’ 처럼 가볍게 읽어봐 주시고,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정도로만 여겨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새털데이(Saturday)니까요.

지금은 아예 현관문 부터 굳게 닫혀 있지만 한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기자들이 선수들의 라커룸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처럼 완전 개방까지는 아니었지만 알음 알음 들어가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참 많은 이야기가 나오곤 했었는데요…. 이제는 정말 먼 옛날 얘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수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아무래도 편한 자리에서 선수들을 보기 어려워지다보니 인간적인 교감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다는 아쉬움도 분명 남습니다.

이만 각설하고.

말씀드린대로 전 기자 생활 처음부터 라커룸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기자들에 비해 좀 더 오래 라커룸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전관예우(?)라고까지 하면 너무 거창하구요. 선수들 입장에선 워낙 오래 전 부터 들어오던 사람이니 하루 아침에 냉정하게 나가라고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라커룸은 일반적인 풍경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각종 영양제가 많았던 선수, 단촐하게 옷 하나 걸려 있던 선수 등 그저 남자들 사는 곳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목욕탕 라커룸의 개인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라커룸에 사진이 붙어 있는데요. 주로 가족 사진을 붙여 놓은 아저씨들이 대부분입니다. 연예인 사진을 본 기억은 그리 많지 않구요. 적지 않은 선수들이 자신의 사진을 걸어 놓곤 했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최고의 순간이 담긴 사진이었죠. 자신의 사진이 멋있게 나온 신문을 스크랩해 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매우 특이한 사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SK 윤길현 선수의 라커에서였는데요. 그는 자신의 얼굴 사진 속 입주위에 굵고 진하게 X자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윤길현 선수는 KIA와 벤치클리어링이 터졌을 때 한 번 크게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때 선.후배도 알아보지 못하는 선수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때 왜 그랬는지를 논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하구요. 중요한 건 그 이후의 대처였다고 생각합니다. 윤길현 선수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선배들에게 사과하고 싶어했습니다. 반성하고 사과하며 살겠다는 말도 했었구요.

처음엔 진실성을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윤길현 선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꾸준히 사과하고 반성해 왔습니다.

라커룸 사진도 마찬가집니다. 자기 사진에 흉물스럽게 검은 X자를 그려두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제가 그 사진을 본 건 그 사건 후 1년 정도가 지난 뒤였습니다. 이젠 더 이상 누가 뭐라 하지 않을 때 였지만 그는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제서야 “다른 선수도 아니고 우리 팀에서 가장 착한 길현이가 힘든상황에 놓엿다”며 안타까워했던 그의 선배들 말이 이해가 됐습니다. 그 후 한참동안 제가 “나쁜 남자”라며 놀리 듯 불러도 착한 미소로 고개 숙이던 윤길현 선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아, 그리고 그 사건 이후 한참 시간이 흘러 광주 구장에 윤길현 선수가 등판하게 된 일이 있었는데요. 윤길현 선수는 갑자기 모자를 벗어 관중석에 고개를 숙이더니 공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는 사람아 더 많았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고, 오히려 그 행동이 예전 일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었지만 ‘진심이 닿을 때 까지 사과하겠다’는 스스로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윤길현 선수는 참 착한 선수 입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냉정하기에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올 시즌에도 마무리 투수로 고생하다 갑자기 보직이 변경되는 일이 있었죠. 실력을 떠나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윤길현 선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 잘하는 선수가 있으니 마무리가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밝게 받아들였습니다.

한때 한국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나쁜 남자’였던 윤길현 선수. 앞으로 그가 펼쳐나갈 ‘착한 야구’가 많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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