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역사 키워드 ⑥ 김구 "호방하지만 냉철한 모습"

  • 등록 2015-08-03 오전 7:40:00

    수정 2015-08-03 오전 7:59:48

김구
[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제작 케이퍼필름)은 영화적 완성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 부여로 또 다른 감동을 낳았다.

3일 오전 기준 657만2836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1000만 관객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다. 1930년대 강제병탄의 치욕에 빠졌던 영화 속 당시 역사는 미·일·중 3국의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는 현재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영화 ‘암살’이 요즘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준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암살’ 속 곳곳에 숨어 있는 신흥무관학교, 간도참변, 의열단, 지청천부대, 김원봉, 김구, 데라우치 등 키워드로 알아본다.

⑥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는 한국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다. 1911년 1월 데라우치 총독 암살모의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1914년 탈옥하였고, 1919년 3·1운동 직후에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를 주도했으며,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가 성공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1939년 임시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고, 이듬해 한국광복군을 조직, 항일무장부대를 편성하였다. 신민회, 한인애국단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암살’에서는 임시정부의 지도자로서 김구의 암살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리더로서의 진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최동훈 감독 曰,

“이봉창과 윤봉길의사의 의거 이후 상하이 일본영사관은 임시정부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들어갔고 김구선생은 항저우 인근 가흥에 은거하고 있었다. 영화 ‘암살’의 시작은 김구 선생의 가흥 시절에서 시작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김구선생의 너털웃음을 짓는 호방함과 동시에 냉철하고 단호한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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