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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일본 이바라키현 미라이시에 위치한 이바라키 골프클럽(파72) 1번홀. 양국의 관심을 보여주듯 360야드에 이르는 파4 홀에는 갤러리들이 빼곡하게 감쌌다. 오전 9시 40분부터 대회 마지막 날 우승을 다투는 챔피언조의 경기가 시작됐다.
갤러리들 틈으로 2017년 JLPGA 투어 상금왕 스즈키 아이가 모습을 보였다. 갤러리들의 열광적인 응원이 쏟아졌다. 뒤 이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왕 출신 이정은(22)이 걸어왔다. 빨간색 치마에 흰색 티셔츠 차림의 이정은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진 게 조금은 긴장하는 듯 했다. 빨간색은 이정은이 가장 좋아하는 색상으로 마지막 라운드 때 즐겨 입는다.
이정은은 JLPGA 투어 출전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라운드까지 4타 차 단독 선두(5언더파 211타)를 쳐 우승을 눈앞에 뒀다. 아이는 이정은의 뒤를 쫓고 있는 경쟁자였다.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로 아이가 호명됐다. 스윙을 두어 번 하더니 힘차게 티샷했다. 일방적인 응원까지 등에 업어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아이는 지난해 상금왕에 이어 올해도 2승을 거둬 JLPGA 투어의 확실한 강자로 자리 잡았다. 이어 함께 경기하는 신지애(30)가 티샷을 했고, 마지막으로 KLPGA 투어 상금왕 출신 이정은을 소개하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표정 없는 얼굴로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선 이정은은 비장한 모습으로 페어웨이를 바라봤다. 드라이버를 얼굴 쪽으로 들어 올리면서 공을 날릴 방향을 설정했다. 그리고 공 앞에서 자세를 취하며 고개를 페어웨이 쪽으로 2번 돌리면서 다시 한 번 목표를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살짝 어깨를 회전하듯 리듬을 타더니 강하게 스윙했다. ‘깡’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공은 페어웨이를 반으로 나누듯 반듯하게 날아갔다. 스즈키 아이의 기선제압에 전혀 눌리지 않는 완벽한 방어였다.
JLPGA 투어는 조금 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3라운드 뒤 이정은의 활약을 소개하며 ‘두렵게 만드는 21세’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했고, 4타 차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맞이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스즈키 아이에 대한 믿음도 보였다. JLPGA 투어는 ‘일본 넘버원의 자존심’이라고 아이를 추켜세웠고, 이어 ‘한국에 이정은은 6명이 있지만, 스즈키 아이는 유일하다’고 은근히 아이를 조금 더 높게 평가했다.
이정은은 우승에 적극적이었다. 3라운드가 끝난 뒤 “우승을 의식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면서 “첫날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4승을 거뒀지만 아직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다”며 “이번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겉으로 평온하고 자신감을 가지는 듯 보였던 이정은의 진짜 속마음은 부담이 컸다. 이정은은 이날 4타 차 선두를 지켜내지 못하고 신지애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스즈키 아이에게 2위 자리마저 내주면서 3위에 만족했다.
경기를 마친 이정은은 “오히려 내가 더 긴장하고 떨었던 것 같다”면서 “경기 초반부터 샷이 흔들렸던 경기였다”고 돌아봤다. 5번홀에서 나온 이글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정은은 “잘 해서 나온 이글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우승을 놓쳤지만, 이정은의 활약은 일본여자골프를 또 한 번 흔들어 놨다. JLPGA 투어는 2016년 전인지(24)가 처음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후 3년 만에 다시 이정은이 우승을 눈앞에 두자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언론에서는 대회 개막 전까지만 해도 이정은의 개인적인 얘기에 관심을 보이다 3,4라운드로 접어들자 기술적인 부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정은의 파워 넘치는 아이언 샷과 똑바로 날아가는 샷이 마치 정밀한 기계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연일 아이와의 대결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신지애의 우승으로 끝나자 안도했다. JLPGA 투어는 ‘승부사의 역전 우승’이라고 평가했고, 아이의 석패에 대해 ‘종이 한 장 차이’였다고 위안했다.
이정은은 더 성장했다. 4타 차 선두를 지켜내지 못한 건 큰 교훈이 됐다. 일본에서 하루 더 머문 뒤 7일 오전 귀국한 이정은은 “많은 걸 깨닫게 했고 큰 경험이 된 대회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