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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은 개봉 초에 ‘곤지암’ ‘바람 바람 바람’에 밀려 약세를 보였다. 개봉 12일째인 지난 8일 정상을 찍더니, 어느 새 200만 돌파를 앞뒀다(11일까지 누적관객 185만명). 또 하나의 슬리퍼 히트 무비 탄생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성공한 덕후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난한 청년의 성공 혹은 성장 스토리다. 영화가 구현한 2045년 미래는 식량 고갈, 환경 파괴 등으로 빈곤이 심해지고, 사람들은 고달픈 현실을 피해서 VR(가상현실)로 창조한 가상의 세계에 빠져산다. 웨이드(타이 쉐리던 분)는 일반적인 히어로무비 속 주인공과 다르다. 토니 스타크나 브루스 웨인처럼 머리가 좋거나 부자가 아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이모의 집에 얹혀사는 가엾은 신세다. 그런 그의 유일한 강점은 ‘대중문화 덕후’.
소통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점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웨이드가 무사히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동료와 이웃의 도움이 컸다. 그러고 보면 스필버그는 ‘이티’ ‘쥬라기 공원’ ‘에이 아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시대를 앞서간 작품으로 놀라움을 안기면서도 그 안에 담은 사랑, 우정 등 보편적인 메시지로 감동을 선사했다. 웨이드가 동경하는 할리데이는 오아시스를 개발하고 억만장자가 됐지만 외로운 말년을 보냈다. 승리의 기쁨을 동료와 함께 나눈 웨이드의 선택은 소통의 단절, 공동체 해체가 심화되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추억소환
영화가 말하는 가상세계, 이 낯선 미래에 대한 심리적인 거리감을 좁힌 건 대중문화였다. 관객이 꼽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추억을 소환시키는 힘, 향수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1980년와 1990년대를 중심으로 20세기 대중문화의 방대한 레퍼런스가 넘쳐난다. 눈 깜짝할 새 수많은 캐릭터와, 오마주 및 패러디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레이싱인 첫 번째 미션은 일본 TV애니메이션 ‘마하 고고고’와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떠올린다. 이때 웨이드가 탄 자동차가 ‘백 투 더 퓨처’의 드로리안이다. 이 레이싱을 킹콩과 티라노사우르스가 방해하는데, 괴수영화의 대표 아이콘들이다. 가상세계에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만화, TV애니메이션, 게임, 영화를 장식한 스타다. 웨이드가 오아시스를 설명하는 장면에선 배트맨 로보캅 키티 프레디가 나오고, 소렌토(벤 멘델슨 분) 군단과 결전을 펼치는 마지막 미션에선 아이언자이언트 고질라 건담 처키 등 장르불문, 세대불문 캐릭터가 총출동한다. 특히 공을 들인 영화 ‘샤이닝’의 오마주는 스탠리 큐브릭에 대한 스필버그의 경의감이 느껴진다.
웨이드가 대중문화를 탐험하며 이스터에그를 찾는 과정은 마치 관객이 웨이드를 아바타 삼아 직접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래서 “내 게임을 해줘서 고마워”라는 할리데이의 말은 스필버그가 관객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매개로 가상과 현실, 미래와 과거,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스필버그 SF의 따뜻한 화법이 관객의 마음에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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