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①여운혁 JTBC 국장 "'방송쟁이'는 상상의 끝으로 가야한다"

  • 등록 2016-05-04 오전 7:00:00

    수정 2016-05-04 오전 7:00:00

여운혁 JTBC 국장은 발칙한 상상력의 기반으로 폭넓은 독서를 꼽았다.(사진=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이정현 기자] “PD는 크리에이티브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고 창작의 기본은 글에서 온다.”

여운혁 JTBC 예능 국장은 PD라는 직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이 같이 밝혔다. 여운혁 국장은 이른바 ‘방송쟁이’다. 방송에 살고 방송에 죽는다. MBC에서 예능PD 생활을 시작한 이후 종합편성채널 JTBC로 둥지를 옮겨 예능프로그램 전체를 이끌고 있다. JTBC가 지상파3사를 위협할 정도로 창의적인 예능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의 역할이 컸다. ‘신화방송’부터 ‘썰전’ ‘마녀사냥’ 그리고 최근 주목받는 예능프로그램인 ‘아는 형님’ 등등.

소년 여운혁에게 방송을 꿈꾸게 한 것이 책이었다. 여운혁 국장은 2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JTBC 사옥에서 진행된 ‘이데일리 명사의 서가’ 인터뷰에서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지 않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책이란 하나의 포르노그래피였죠”라며 “책을 통해 상상의 끝으로 갈 수 있었고 생각의 틀을 넓혔습니다”라고 했다.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특정 분야에 깊이 몰두하는 것도 좋겠지만 폭넓은 시야를 위해서는 다양한 책들을 접해야 합니다. 때로는 금기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하죠.”

여운혁 JTBC 제작국장의 서가에 꽂힌 책들은 어렵지 않다. 방송은 대중문화인 만큼 즐기는 책들도 가볍게 즐기기 좋다. 전문서적 보다는 재밌는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나 독특한 소재의 책들이다. 처음으로 내민 책은 아랍 문학의 고전 ‘아라비안 나이트’다. 그는 “우연히 접했다가 일주일을 꼬박 세워 다 읽어버렸어요”라고 소개했다.

◇고전에서 파격을 배운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고대 페르시아를 비롯한 아랍 지역의 각종 민담과 전설 등을 한데 모아 만든 이야기다. 바람난 왕비를 처형한 페르시아 왕의 의심병을 달래고 살아남기 위해 1000일 밤 내내 한가지씩 이야기를 들려줬다는 슬기로운 여성 셰에라자드의 ‘천일야화’로도 알려졌다.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알라딘과 요술램프’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이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여운혁 국장은 ‘신밧드의 모험기’는 알아도 ‘아라비안 나이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 자부했다. 우리에겐 동화에 가깝게 알려졌으나 사실은 금서에 가까울 만큼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있다고도 귀띔했다. 근친상간, 수간 등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소재인데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파격적인 이야기를 즐기다 보니 무언가를 바라볼 때 편견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출신지나 인종, 학벌 등을 구분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도움됐어요. 크리에이티브 분야 종사자에게 필독을 권할 정도로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지금 봐도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운혁 국장은 “예능 프로그램의 끝은 다큐멘터리”라는 개그맨 이경규의 말에 공감했다. 아무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유행이라고 해도 현실이 훨씬 더 혹독하다. 수천 년 전 아랍인들도 이렇게 파격적인 이야기를 즐겼는데 현재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되물었다.

여운혁 국장
◇때론 삐딱하게 읽을 줄 알아야

독자로서 여운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풀어가기 마련인 소설을 읽을 때도 조연이나 잠시 등장한 단역 캐릭터의 사연을 상상한다. 흔한 고전인 ‘삼국지’를 읽을 때도 유비나 조조의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았다. 적벽대전에서 사라진 100만 군졸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그때부터 ‘삼국지’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작가가 의도한 바를 알아가는 것도 좋으나 때로는 발칙한 상상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라는 그는 “악당이라 할지라도 그의 인생이 있고 철학이 있을 겁니다. 작가가 글에 담지 않은 이면의 것을 떠올리다 보면 의외의 보석을 찾아낼 때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텍스트에 함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성격이 원만하다는 것은 맺고 끊음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일 수도 있고 매사에 신중하다면 꼼꼼함이 지나치다는 뜻일 수 있죠. 같은 책이지만 삐딱하게 봄으로써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독자의 몫이죠.”

여운혁 국장은 요즘 시청자는 PD의 가이드 라인에 너무 익숙하다고 지적했다. 쿡방이나 먹방의 유행, 최근 음악예능이 범람하면서 예능프로그램이 획일화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포맷이 정해진 프로그램은 금방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그는 “정통 예능프로그램은 웃음 하나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변화무쌍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여 국장은 “현재 방송되는 예능프로그램 중 정통에 가까운 것은 ‘아는 형님’뿐”이라고 자부했다. 유행을 따르기보다 묵묵히 웃기는 방법만 고민한다. 그가 탄생시킨 JTBC의 많은 예능프로그램은 시청자가 웃는 것이 제일의 목표다. 시청자가 ‘근본 없는 예능’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반갑다. 정해진 포맷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연출하는 것을 시청자가 받아들이고 있다는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유행을 따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미투’ 경쟁자가 생기겠죠. 차별화를 넘어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전쟁터 같은 방송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JTBC ‘아는형님’
▲여운혁 국장은 방송가에서 승부사라 불린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1993년 MBC에 PD로 입사한 뒤 ‘강호동의 천생연분’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명랑히어로’ 등 분야를 넘나드는 예능프로그램을 기획·연출했다. 유재석과 강호동 등을 ‘국민MC’ 반열에 올렸다. 2011년 종편 개국과 함께 JTBC로 옮겼다. ‘신화방송’으로 시작을 알렸고 ‘히든싱어’ ‘썰전’으로 터를 닦았다. JTBC 예능의 기틀을 세우고 색깔을 명확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2월 JTBC 제작2국장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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