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과 나카타, 묘하게 닮은 韓·日 축구영웅

  • 등록 2015-02-14 오전 7:05:46

    수정 2015-02-14 오전 8:49:33

△ 박지성(왼쪽)과 나카타.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e뉴스 박종민 기자] 한일 축구의 황금기를 이끈 박지성(33)과 나카타 히데토시(38)가 이틀 간격으로 국내에서 공식 일정을 가졌다. 박지성은 11일 교보문고 강남점서 사인회를 열었고, 나카타는 지난 9일 서울 장충단로 반얀트리 호텔에서 진행된 ‘메트로폴리탄 드림 바이 나카타’ 론칭 행사에 참석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박지성과 나카타는 한일 축구의 세계 진출에 활기를 불어넣은 선수들이다. 두 선수는 일본 J리그와 유럽 빅리그를 경험했고 자국대표팀의 월드컵 기적을 일궈냈다. 박지성은 20세의 나이로 교토 퍼플상가에, 나카타는 19세의 나이로 벨마레 히라쓰카에 입단해 J리그 그라운드를 밟았다.

월드컵에서의 성과를 통해 유럽진출에 성공한 것도 공통점이다. 박지성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쏘아 올린 후 이듬해 PSV 에인트호번 유니폼을 입었다. 1998년 일본을 사상 최초로 월드컵에 진출시킨 나카타는 곧바로 페루자에 입단했다.

△ 박지성(왼쪽)과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 (사진=AFPBBNews)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와 같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클럽을 거쳐 PSV 에인트호번에서 임대로 한 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나카타는 세리에A 소속 AS로마, 파르마, 볼로냐, 피오렌티나 등에서 활약했다.

2005년 7월부터 맨유에서 7시즌을 뛴 박지성은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와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페루자 유니폼을 입은 나카타는 이탈리아 데뷔전인 유벤투스와 개막전서 2골을 넣으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AS로마 시절 팀이 ‘스쿠데토(리그 우승)’를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빅리그 EPL과 세리에A에서 이들의 존재감은 유독 빛났다. 유럽에 비하면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축구 변방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선진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아시아인 최초’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박지성의 맨유 주장 발탁, 나카타의 세리에A 우승 등에는 ‘아시아인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벨마레 히라쓰카 시절 홍명보와 함께 뛴 나카타는 한국 축구를 존중하면서도 도전의식을 가졌다. 나카타는 나이로 볼 때 한국으로 따지면 ‘X세대’의 후발주자에 해당한다. 그는 보통의 일본 사람들과는 사고방식이 달랐다. 깨어 있는 신세대였고 그래서 무분별한 민족주의는 배제했다. 앙숙관계에 있던 한국을 존중하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포함돼 있다.

나카타는 A매치 77경기에 나서 11골을 기록했다. 한국은 일본과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나카타에게 전담 수비수를 붙였다.

박지성은 A매치 100경기에 출전해 23골을 넣었다. 그는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한일 친선전서 골을 성공하고 이른바 ‘산책 세리머니’를 펼치며 3만 일본 관중의 함성을 잠재웠다. 한국이 나카타를 견제했듯, 일본인의 인식에도 박지성은 위협적인 존재였다.

△ 나카타. (사진=AFPBBNews)


두 사람의 은퇴이유는 사뭇 달랐다. 박지성은 무릎 부상이 은퇴의 주요한 이유였다. 반면 나카타는 축구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축구가 일종에 일로 느껴졌다는 게 직접적인 은퇴이유였다. 그만큼 나카타의 축구를 대하는 철학은 확고했고 멋스러웠다. 나카타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축구화를 벗어 던지고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박지성이 모범적이고 성실한 축구선수였다면, 나카타는 보다 개성있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20세 남짓한 축구 유망주들은 ‘롤모델’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으레 박지성과 나카타를 언급한다. ‘박지성 키드’, ‘나카타 키드’는 곧 한일 축구의 미래다. 비슷한 듯 다른 선수인 박지성과 나카타는 지난 1월 축구전문매체 ‘ESPN FC’가 선정한 ‘亞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 10인’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차범근과 오쿠데라 야스히코가 한일 축구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박지성과 나카타는 양국 축구의 세계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공식 일정을 가진 두 선수를 보니 한일 축구의 지난 영욕의 역사가 불현듯 떠오른다. 박지성과 나카타는 최근 20여년 간 한일 축구의 등불 같은 존재였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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