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①]나훈아, '그 어떤 쇼보다 치밀했던 기자회견'

  • 등록 2008-12-31 오전 9:08:23

    수정 2008-12-31 오전 9:13:56

▲ 지난 1월 기자회견 당시 나훈아

올 한해 연예계에는 유독 사건과 사고가 많았다. 그 탓에 연예부 기자들은 방송국이나 촬영현장이 아닌 경찰서나 법원 혹은 병원이 주 출입처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8년의 마지막 날, 올 한해 연예계를 충격에 몰아 넣었던 수많은 사건사고 가운데 현장에서 실제 있었던, 그러나 당시 기사에는 차마 담지 못했던 뒷이야기들을 송년 특집으로 묶어 뒤늦게 소개한다. 2009 기축년(己丑年) 새해에는 이와같은 일들이 또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편집자주>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나훈아 기자회견, 혹 퍼포먼스는 아니었을까?'

지난 1월 25일 오전 서울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는 약 400여 개의 의자가 홀에 배치됐다. 그리고 배치된 좌석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연단이 만들어졌다. 호텔 주차장에는 생방송을 위한 중계차가 대기했다. 오전 11시에 열릴 한 연예인의 기자회견을 위해서였다. 오전 7시부터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오전 9시에는 이미 취재진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일부 기자들은 그 전날부터 호텔 로비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2008년 1월, 새해 벽두를 뜨겁게 달군 연예계 핫 뉴스는 다름 아닌 ‘나훈아 괴담’이었다. 나훈아가 2006년 말 데뷔 40주년 공연 이후 예정된 콘서트를 갑자기 취소하고 행방이 묘연하자 야쿠자 폭행설 등 그를 둘러싼 여러 가지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다. 나훈아 괴담은 경찰까지 수사에 나설 정도로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언론사의 연예부 기자들과 사회부 기자들까지 취재에 나섰지만 실체는 없이 의혹만 커져갔다. 당사자인 나훈아와 연락이 된 매체가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나훈아가 그만큼 철저히 잠적을 했었다는 이야기다.

1월 25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자청했던 나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회견장에는 약 400명이 넘는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나훈아의 기자회견은 규모 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여타 연예인들의 기자회견과 사뭇 달랐다. 우선 회견장엔 의자만이 놓였을 뿐 노트북을 열고, 혹은 수첩을 펴고 기사를 쓸 테이블이 없었다. 기자회견장에는 기자들만 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기자들 뒤에는 나훈아의 팬들도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나훈아는 환갑이 넘은 나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정정한 모습으로 연단에 올랐다. 연단의 높이는 상당했다. 취재진을 위에서 내려다 보며 말문을 연 그는 “해명할 사실이 없어 그간 가만히 있었다”며 “언론이 그간 확인도 없이 나에 대한 기사를 쓴 만큼 오늘만큼은 내가 할 이야기를 다 해야겠다”고 기자들의 질문을 원천봉쇄한 채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날 기자회견의 하이라이트는 연단 위에 올라선 나훈아의 일명 '바지 벗기' 돌발 행동이었다. 나훈아는 자신을 둘러싼 신체 훼손설 등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뒤 갑작스레 연단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허리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당시 이를 생방송으로 전하던 케이블 뉴스 채널들은 황급히 카메라를 돌려야 했다. 나훈아는 “벗어야 믿겠습니까?”라며 일성,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취재진들은 잠시 망연했다. 
 
▲ 지난 1월 기자회견 당시 바지를 내리려 했던 나훈아.

당시 현장에 있던 일부 기자들은 나훈아의 카리스마에 기가 죽었다는 후일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마치 종교집회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 하며 나훈아의 모습이 흡사 교주 같았다는 것이다. 이는 회견장 뒤편에서 “오빠를 믿습니다”라고 목청을 높인 나훈아 팬들의 영향도 컸다.

올초 있었던 나훈아 기자회견은 엄밀히 말하면 기자회견이 아니었다. 통상적으로 기자회견이란 대중들로부터 질문을 위임받은 기자들과 당사자가 질의응답을 통해 의혹을 해소하거나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간을 뜻한다. 하지만 나훈아의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그저 나훈아의 이야기를 받아적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기자들은 질문을 할 수 없도록 통제된 상황에서 1시간 동안이나 그의 이야기만을 경청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나훈아의 기자회견은 그 어떤 공연보다, 혹은 그 어떤 쇼보다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던 셈이다. 나훈아가 의도한 대로 취재진은 나훈아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전하는 상황에 놓였을 뿐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훈아는 이날 이후 또 다시 언론과의 모든 접촉을 끊었다. 회견 당시 보도자료에 적혀 있던 관계자 연락처 역시 기자회견 직후 바로 없는 번호가 됐다. 나훈아의 공연에 관계해온 측근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주변 모든 사람들이 일순 연락처를 바꾸어버렸다. 
 
올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나훈아의 기자회견. 그것 또한 혹여 고도로 계산된 퍼포먼스는 아니었을까? 기자회견의 진실은 나훈아 본인만이 알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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