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나눔이 '국민아버지' 만들어줘..북 어린이 돕고싶다"

최불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 인터뷰
"나눔은 삶의 일부…북 어린이 돕고싶다"
"방송보다 연극 무대서 배우 최불암으로"
  • 등록 2015-11-12 오전 8:12:02

    수정 2015-11-12 오전 8:14:30

최불암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한 우물만 파기도 어려운데 연기와 나눔, 두 길에 평생을 바치는 이가 있다. ‘국민 배우’ ‘국민 아버지’로 알려진 배우 최불암(75)이다. 최불암은 1981년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으며 서울지역 후원회장을 지내고 1985년부터는 전국후원회장을 맡으면서 국내는 물론 스리랑카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 해외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활동을 해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반평생 어린이 후원에 힘써온 최불암의 전국후원회장 30주년을 기념하며 10월 한 달 간 그가 예술감독으로 나선 연극 ‘시유어겐’을 무대에 올렸다. 공연 마지막 날에는 전국후원회장 30주년 기념식을 가지고 그의 공로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최근 30년간 변함없이 어린이를 후원하며 나눔의 삶을 실천해온 최불암 전국후원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눔은 그에게 삶의 일부였다. “뗄 수 없는 몸의 일부분이다”며 “나눔을 통해 ‘국민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며 소중한 의미를 뒀다. 나눔을 향한 열정, 의지는 대단했다. 30년간 많은 국내외 어린이들을 도왔는데도 북한 어린이 생각에 마음 아파했다. 연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눔을 실천하면서 앞으로는 연극 무대를 통해 배우의 길도 열심히 걸어갈 뜻을 전했다.

다음은 최불암 전국후원회장과 일문일답

-최근 최불암 회장님의 30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진정한 봉사는 비 맞고 있을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지난 30년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만남이 있었기에 삶을 소중히 잘 살게 되었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MBC 드라마 ‘전원일기’ 김 회장이 장에서 구걸하고 있는 금동이라는 아이를 입양합니다. 드라마 속 김 회장이 한 일인데 잘했다는 칭찬이 배우 최불암에게로 쏟아졌어요. 이를 계기로 어린이재단을 통해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아 시작하게 됐습니다. 1981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서울지역 후원회장을 맡았고, 1985년부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재단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지금껏 많은 어린이들을 후원해오셨는데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면요.

△30년간 재단의 후원회장으로 활동해오며 국내외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중 최근 케냐에서 만난 아이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 슬럼가에서 만난 ‘데이비드 마이나’라는 아이입니다. 올해로 12살 되었는데, 매일 하교 후에 권투 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체육관에서 열심히 연습을 하는 아주 부지런한 아이였어요.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랑 사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주말에는 돈을 마련하려고 쓰레기장에서 플라스틱이나 고철, 옷 등을 주워 내다 팔고 있어요. 그런데 그 쓰레기가 우리나라처럼 ‘부자 쓰레기’가 아닙니다. 아주 ‘가난한 쓰레기’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쓰고 버리는 쓰레기를, 이 아이처럼 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이 주워다 파는데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요. 쓰레기 더미에서 찾은 그나마 깨끗한 음식들은 아이들이 먹기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죠. 이러한 아이들을 어떻게 방관하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도와야죠. 우리가 우리들의 미래인 이 아이들을 좌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0년간 후원을 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한 결 같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나눔을 실천하며 내가 더 큰 행복덩어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후원자가 1981년부터 84년까지 7만명이 모이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미국 본부(국제어린이재단연맹)에서 고맙다며 나랑 집사람을 초청했습니다. 현지의 교육 프로그램을 들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열흘간 머물면서 나눔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후 전국 후원회장을 맡게 됐는데, 다시 2~3년 만에 후원자가 17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연기하는 시간을 빼면 재단 활동을 쫓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원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과 주변의 도움도 컸을 것 같습니다.

△집사람도 청각장애우들을 돕는 사랑의달팽이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춘 김혜자도 다른 NGO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수많은 후배들이 곳곳에서 나눔을 실천하며 각자의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이 가장 큰 지지자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후원을 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요.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내 삶속에서 나눔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내 반평생을 나눔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 땅과 북한, 해외 곳곳을 다니면서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희망의 싹입니다. 그 싹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보호하며 가꾸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입니다. 아직도 각처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함께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눔은 최불암 회장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나눔은 곧 저의 삶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저의 몸 일부분과도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나눔, 봉사 이러한 이미지가 연기 활동을 하는데 제약은 없었는지요.

△나눔과 봉사의 이미지는 오히려 저를 국민아버지로 더 친숙하게 만들고, ‘최불암’을 믿어주는 강한 긍정적 작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금도 드라마나 연극 등 무대에 서면 저는 또 그 역할에 맞는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합니다. 나눔이 제 삶의 제약이 아닌 보약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전 다양한 역할을 통해 배우 최불암으로서 살아갈 겁니다.

-지금은 배우보다 ‘나눔’ ‘봉사’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지난해 방송한 ‘기분 좋은 날’에 이어 또 안방극장에서 뵐 수 있을까요?

△수십 명씩 모여서 찍는 드라마는 이제 못할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가면 후배들이 자리를 피합니다. 후배들이 어려워하니, 분장실에 홀로 앉아있다 보면 외로운 싸움이 됩니다. 또 나이 차이가 많이 지는 후배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코드가 잘 안 맞아 이야기 진행이 어려워요. 앞으로는 연극 무대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나눔 또는 활동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또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도울 수 있다면 북한 아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해외 나갈 때마다 북한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아파요. 여건만 되면 북한을 먼저 찾고 싶은데 상황이 허락하지 않네요. 아버지가 황해도 해주 출신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렵게 살아가고 있을 북한 아이들이 늘 생각납니다. 길이 열리면 그 아이들을 만나러 꼭 가고 싶습니다.

최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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