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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가 일부 장르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살인의 추억’(2003년) ‘올드보이’(2003) ‘추격자’(2008) 이후 범죄물, 수사물, 스릴러 등 표현 수위가 높은 ‘센 영화’에 편중돼 있다. 남자배우들의 배역에서도 확인된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형사 역을 한번씩 거친다. ‘극비수사’ 당시 김윤석도 “국내의 주연급 남자배우들 중 형사 역할을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거다고 말한 바 있다.
올해는 유난히 크고 센 영화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해였다. 지난해 말 권력자들의 부패와 비리를 다룬 ‘내부자들’을 시작으로 외지에서 일어난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을 그린 ‘곡성’ 두 여성의 금기된 사랑을 그린 ‘아가씨’ 좀비를 소재로 한 ‘부산행’ 등이 크게 흥행을 하면서-‘내부자들’ ‘아가씨’ 등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핸디캡에도- 센 영화에 대한 축적된 피로가 한계에 달했다. 그 직격탄을 ‘아수라’가 맞았다.
그럼에도 센 영화들의 잇딴 개봉에 ‘아수라’는 폭력성 논란까지 휩싸이며 거부감을 일으켰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출연진이 겹친다는 점도 피로도를 높이는 요인이 됐다. 캐릭터가 다른데도 황정민과 곽도원의 캐릭터는 ‘사생결단’(2006) ‘신세계’(2013)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변호인’(2013) 속 캐릭터와 비교됐다. 보통 상업영화 한 편에 50억원(영화진흥위원회 2015년 개봉작 평균 제작비)이 든다. 수십억원의 돈이 드는 만큼 투자자들은 모험보다 안정을 추구한다. 장르뿐 아니라 배우도 해당된다. 몇몇 배우들이 ‘소처럼 일한다’고 하는 데에는 시나리오가 일부 배우에게 쏠리는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배우들은 똑같은 이야기, 똑같은 캐릭터가 없다고 하지만 관객은 디테일한 차이보다 눈에 보이는 유사함에 더 주목한다.
‘아수라’의 기세가 꺾이면서 비인기 장르의 영화들이 뜨는 것도 센 영화들에 대한 피로감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럭키’ 외에도 팀 버튼 감독의 판타지 ‘미스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다큐멘터리 ‘자백’과 드라마 ‘죽여주는 여자’ 등으로 모처럼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의 선택을 받고 있다. 가물에 단비처럼 나오는 멜로도 재개봉을 통해 재조명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이터널 션사인’은 32만명으로 첫 개봉 때보다 2배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인생은 아름다워’ ‘500일의 썸머’도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최근 개봉한 멜로 ‘노트북’도 1주일 만에 5만명을 동원하며 멜로에 고픈 관객의 허기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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