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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의 사랑은 묘한 경계를 타고 있다. 20세 남자와 40세 유부녀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질타 받을 일. 그럼에도 두 사람의 사랑을 애틋하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만드는 ‘밀회’를 ‘미화된 불륜’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밀회’에 대한 호평이 담긴 기사를 두고 언론이 사랑의 불륜을 미화하고 있다는 지적을 아끼지 않은 네티즌도 많았다.
하지만 ‘밀회’가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비난을 보내는 이들에게 “방송을 제대로 보고 말해라” 응수하기도 했다. 사실 ‘밀회’가 14회 걸쳐 보여준 것이 김희애와 유아인의 키스신만은 아니었다. 각각의 인물이 살고 있는 세상이 회를 거듭할 수록 깊이를 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밀회’를 ‘삶의 축소판’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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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근거 중 하나는 김희애와 박혁권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40년 만에 처음 찾아온 ‘사랑’인 선재(유아인 분)가 아닌 ‘중2병’에 걸린 떼쟁이 남편 강준형(박혁권 분)에 대한 시청자의 이입도 상당했다.
극중 강준형은 오혜원(김희애 분)이란 여자를 성공의 수단으로 선택했다. 사랑하는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준형은 자신의 신분 상승과 안락한 삶을 위해 오혜원을 택했고, 오혜원 역시 그의 ‘러브콜’에 영혼 없는 응답을 보냈다. 그렇게 보내온 세월, 두 사람 사이엔 아이도 없다. 각자의 이불을 덮고 자는 ‘쇼윈도 부부’의 전형이다. 준형은 급기야 애제자인 선재에게 뺏긴 아내를 보며 “내가 성공하려면 너가 있어야 한다”고 회유를 하기도 했다. “네가 어떻게 날 두고 다른 남자와”라는 논리는 없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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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의 삶에는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나의 뒤를 공격할지 모를 사회를 조명했다. 서한예술재단이라는 고고한 품격의 결정체를 배경으로 했지만 사실 다람쥐 쳇바퀴 구르듯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사는 직장인이라면 그러한 사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시기, 휴가라도 다녀오면 ‘혹시 내 책상이 없어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직장인의 삶은 오혜원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혜원은 선재에게 종종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상류 사회를 ‘추악한 곳’이라고 말해왔다. 땀이 배신하지 않고, 돈이 노력한 만큼도 벌이기 힘든 소시민의 삶을 산 선재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을 만큼 부끄러운 삶이었다. ‘밀회’는 닳고 닳은 한 여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심혜진부터 백지원까지 극중 서한예술재단의 곳곳을 비추는 인물관계를 보면 드러난다. 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수족이 돼준 기획 실장의 불륜을 들춰내려고 혈안이다. 기획 실장 앞에선 “너 없이 어떻게 재단이 돌아가겠냐”며 어깨를 두드리지만 그는 언제 나가 떨어질 지 모르는 기획실장의 뒤를 이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겉으론 고고한 척 행세하는 미운 백조의 전형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언제 나를 치고 올라올지 모를 부하 직원을 경계해야 하는 과장이나 출근 자체가 눈치 보이는 정년을 앞둔 부장, 이런 이들의 마음엔 더욱 와닿을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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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가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건 안판석 PD의 연출, 정성주 작가의 대본이 기본에 있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연기한 김희애, 유아인, 박혁권, 경수진, 심혜진 등 배우들의 시너지 덕이었다. 김희애는 파우더룸에 앉아 숨을 쉬고 있는 장면만으로도 야릇한 분위기를 내며 ‘40세 여인’의 판타지를 극대화시켰다. 유아인은 천재피아니스트 이선재 역할에 임하며 실제 연주 실력은 물론 표정까지 완벽한 연기를 해냈다. ‘청춘의 표상’이나 ‘남자의 전형’으로 누구보다 ‘밀회’ 속 다양한 연령대와 이해관계의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는 반응이다. ‘안판석 PD의 남자’로 유명한 박혁권은 명불허전의 캐릭터 표현력을 보여줬고, 유아인의 든든한 친구이자 김희애의 연적으로 활약한 경수진 역시 ‘밀회’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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