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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성공기
‘왕의 남자’는 2005년 12월 개봉 당시, 300만 관객이 들면 잘 된 것이라 예상된 작품이었다. ‘사극은 진부하다’는 선입견이 그때만해도 강했기 때문. ‘다모’, ‘대장금’, ‘해신’ ‘불멸의 이순신’ 등 사극 드라마가 TV에서 연이어 성공을 거둔 연장선상에서 ‘왕의 남자’도 빛을 볼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당시 ‘왕의 남자’는 비슷한 시기 개봉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900컷으로 촬영된 것과 비교해 1800컷으로 촬영해 이야기 전개를 빠르고 밀도있게 배치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안을 채운 공길, 장생, 연산, 녹수, 처선 등 다섯 인물엔 캐릭터의 힘이 저마다 깃들었다 호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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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 관객을 돌파한 ‘사도’는 ‘왕의 남자’의 성공기와 닮았다. ‘사도’도 개봉 전 우려가 있었다. 이준익 감독이 목표로 삼은 500만 고지도 힘들 것이라 내다본 시선도 있었다. 정통사극을 지향한 무거운 영화였던 탓이다.
‘왕의 남자’가 그러했듯, ‘사도’도 흥행에 성공했다. 전반전은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 대세 청춘스타 유아인의 조합으로 이겨냈다. 이준익 감독만이 완성한 알맹이 덕에 후반전에도 체력을 잃지 않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었다.
‘왕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사도’는 이야기에서 뒷심을 얻었다. 왕 영조와 세자 사도, 세손 정조로 이어지는 가족사로 승부를 봤다. 8일간의 비극을 장황하게 풀어놓는 미시적인 시각으로 카메라를 잡았다. 때론, 3대에 걸친 수 십년의 세월을 거시적인 시선으로 비췄다. 갓 태어난 아들에게 준 부채를 부여잡고 뒤주에서 오열하는 사도. 그리고 그 부채를 들고 아비를 추억하는 춤을 추는 장년이 된 정조. 이 두 인물을 한 영화에 담기기란 쉽지 않다. 일각에서 정조의 분량을 두고 ‘사족이었다’는 평을 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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