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의 커피 이야기] 인스턴트 커피 이해하기

  • 등록 2015-05-23 오전 6:17:50

    수정 2015-06-01 오후 3:12:34

김정욱의 커피이야기 에스프레소.
[이데일리 스타in 연예팀] 몇 년 전 일이다. 지인과 길을 가는 중 요란한 소리에 끌려 보니 한 카페에서 커피 행사를 하고 있었다. 행사 목적은 현장에서 내린 원두커피와 자신들이 새롭게 출시한 인스턴트커피를 동시에 비교시켜 어느 쪽이 원두커피 인지를 구별하는 행사였다.

그만큼 인스턴트커피이지만 원두커피 못지않은 품질을 보여주려는 행사인 것 같았다. 커다란 스탠드 배너에는 각각 소비자들이 마시고 붙인 스티커 자국들이 혼란스럽게 붙여져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현장에서 내려준 원두커피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별 주저 없이 각각의 부분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 모습을 본 옆의 지인은 내가 선택한 것이 맞는지 직원에게 바로 물어보았고 직원은 약간의 묘한 표정을 지으며 정답이라고 말했다.

지인은 어떻게 그렇게 망설임 없이 빨리 맞췄는지 대답하라고 채근했다. “이건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커피의 특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라고 지인에게 말하자 무슨 차이가 있냐고 더 빠르게 몰아붙였다. 이 행사에서 보여준 커피는 요즘 새롭게 나온 인스턴트커피인데 기존 커피와 다르게 약간의 원두커피 가루를 매우 미세하게 갈아서 원두커피와 같은 분위기를 좀 더 이끌어 내려고 만든 것이었다.

이런 커피들과 원두커피를 구별하기 위한 좋은 기준은 향이다. 미세하게 갈은 원두커피를 인스턴트커피에 소량 넣기는 했지만 원두커피와 비교하면 그 향에서 분명한 차이가 난다. 소비자들이 혼동했을 부분은 아마도 향보다 맛으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인스턴트커피 제조사들의 오랜 노하우의 비결은 맛에 응축되어 있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갓 뽑은 원두커피의 자연적 향을 인스턴트커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맛에 더 치중하게 된다.

혹자는 향이 풍부해도 떫은맛이 나는 저품질의 원두커피보다는 오히려 이런 인스턴트커피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주변에 좋은 카페가 없어 질이 매우 좋지 않은 태운 콩이나 떫은맛의 원두커피를 참고 인내하며 마시는 것보다 인스턴트커피가 조금 나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래도 인스턴트커피가 자연적으로 ‘좋은’ 원두커피의 맛과 같거나 더 좋게 만들 수는 없다.

인스턴트커피는 쉽게 말해 물에 잘 녹는 커피를 의미한다. 우리도 인스턴트커피를 만들 수 있다. 가령 아메리카노커피를 불에 가열하여 계속 끓이거나, 오랜 시간 내버려두면 수분은 증발하고 커피의 분자들이 남게 되는데 그 가루를 다시 물에 타서 마시면 인스턴트커피처럼 된다.

하지만 추출한 커피를 장시간 방치하면 커피와 함께 추출된 그 물이 다 증발하기 전에 미세균들이 먼저 증식하게 되거나 균 증식을 막는다 해도 공기 중에 노출된 커피 향의 손실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실제로 이렇게 만든 커피를 마시는 건 무의미하다. 때문에 대형 인스턴트커피 제조사들은 냉동건조비법이나 다양한 노하우를 이용하여 인스턴트커피를 만든다.

에스프레소의 경우, 높은 압력으로 짧은 시간에 빠르게 추출이 이루어져 한 잔의 데미타세(demitasse)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나면 그 안에 빠르게 고형물의 성분이 굳으면서 잔에 커피 분자들이 붙어 있게 되는데 양이 작기는 하지만 그것을 긁어서 물을 타면 인스턴트커피의 비슷한 원리를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인스턴트커피도 있지만 우리가 대부분 이용하는 것은 프림과 설탕이 모두 들어간 커피 믹스다. 커피업계에 있는 한 지인의 이야기다. “자신이 오래 동안 모시는 커피 스승님이 계시는데 이분은 내가 찾아갈 때마다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커피믹스 심부름이다. 나는 종종 강의할 때 아직도 자신은 커피믹스를 좋아한다고 부끄러워하는 수강생들을 만날 때가 있다. 특히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의 경우가 더 그런데 몇 십 년 드신 그들의 커피믹스는 단순히 맛과 향으로 구분될 수 없는 것이다.

원두커피가 흔하지 않은 시절부터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믹스커피를 당장 원두커피가 대세라고 마시라고 하는 건 오랜 세월 막걸리나 소주 등을 마셔온 사람에게 갑자기 와인이 더 고급술이니 바꿔 마시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실 커피믹스는 말 그대로 믹스된 커피다. 커피 자체의 맛과 향을 논하는 음료가 아니라 커피 화이트너(프림)와 설탕이 함께 들어가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맛인 음료다.

해외 다양한 커피 전문가들이 한국에 올 때 내가 가끔 커피믹스를 부러 타서 내준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흥미롭게 여긴다. 그건 커피 본질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커피가 들어간’ 음료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문화가 성숙한 나라일수록 하위문화(subculture)가 잘 발달되어 있다. 하위문화 전체를 간혹 질이 낮은 문화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위문화는 ‘지배문화’에 대한 상대적인 의미인 ‘부분문화’로 이해해야 한다.

하위문화가 잘 이해되는 사회일수록 보다 성숙한 문화들이 형성되고 발달된다. 오래시간 힘들게 일하고 피로를 달래기 위해 마시거나 등산이나 여행을 가서 마신 커피믹스의 문화의 밑바탕이 있었기에 한국사회에서 원두커피와 카페 문화가 크게 저항 없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스턴트커피는 그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목적에 맞게만 마시면 된다. 가령 원두커피 자체의 본질적인 향미의 초점이 아니라 편리함 때문이라든가, 아님 프림과 설탕이 믹스된 맛이 먹고 싶어서 라면 얼마든지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음료다. 대학 때 캠퍼스 자판기에서 마신 커피나 당구장 아저씨가 진하게 타준 커피의 추억이 생각날 때 나도 가끔 커피믹스를 마신다.

△글=김정욱 現 딸깍발이 코퍼레이션 대표. 現 커피비평가협회 한국본부장.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베스트 컵 콘테스트 심사위원(2015 BCC)

인스턴트커피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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