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의 톺아보기]끊임없는 표절시비..저작권法, 안녕하십니까

  • 등록 2015-03-14 오전 8:01:18

    수정 2015-03-14 오전 8:01:18

킬미 힐미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한쪽은 ‘약자’라고 호소한다. 다른 한쪽은 불명예에 치욕을 느낀다.

드라마를 둘러싼 표절시비는 이러한 구도로 논쟁을 이어왔다. “내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TV전파를 탈 힘, 언론플레이를 할 힘이 없다”며 억울해 한다. 반대 편에 선 이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무슨 소리, 이건 엄연한 내 작품이야”라고.

잡음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법이다. 우리나라에도 저작권법이 있고, 이에 따라 고유의 창작물이 보호되고 있다. 표절시비를 운운하는 이들의 쟁점은 무엇일까. 그 시비를 가릴 국내 현행 법은 어떻게 실현되고 있을까.

△늘 ‘진흙탕 싸움’이었다

수목 안방극장은 표절 논란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MBC ‘킬미 힐미’와 SBS ‘하이드 지킬 나’는 비슷한 캐릭터, 유사한 이야기를 안고 ‘원조 논쟁’을 벌였다.

‘하이드 지킬 나’의 원작은 2011년 발표된 만화 ‘지킬박사는 하이드씨’였다. 이중인격의 남자와 한 여자의 러브스토리가 골자다. 이충호 작가는 7개 인격을 가진 남자와 한 여자의 로맨스로 알려진 ‘킬미 힐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킬미 힐미’ 제작사는 이 작품이 진수완 작가가 2008년에 ‘아무도 모른다’라는 가제로 완성한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기획된 것이라 밝혔다. 2008년엔 시기상조라 완성될 수 없었던 아이템, 기획이 7년이 지나서 빛을 봤다는 뜻이다.

아홉수소년 포스터.
지난해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었다. 9세, 19세, 29세, 39세 등 ‘아홉수’로 얽힌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대학생 연합 동아리 창작 뮤지컬 ‘9번 출구’와 내용, 설정 등에서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표절 의혹이 일었다. 제작진은 곧바로 관련 사실을 부인했고 ‘9번 출구’의 이정주 작가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해 관상이라는 소재로 광해의 삶을 다뤘던 KBS2 드라마 ‘왕의 얼굴’은 영화 ‘관상’ 측과 첨예한 대립을 벌여왔다. ‘관상’ 측은 KBS 드라마국과 영화의 드라마화를 논의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왕의 얼굴’ 제작과 방송, 편성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작품이 시작 전부터 혹은 잘 나가던 중이나 끝나가는 가운데 표절 시비에 말리면, 작품은 본래의 진정성을 잃기 마련이다. 작품성에 대한 내용이 담긴 기사에도 표절과 관련된 반응이 달리기 일쑤고, 작품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시끄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A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이데일리 스타in에 “표절 문제는 양측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되는 싸움이다”며 “모두 자기 작품을 지키려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주장이 부딪히기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도 입고 내 작품을 믿어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그로인한 부담감이 모두 커지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표절, 진짜 쟁점은 무엇인가

제3자의 입장에서는 표절시비가 진실공방처럼 비춰진다. 이번 ‘킬미 힐미’와 ‘지킬박사는 하이드씨’도 비슷했다. 이충호 작가는 ‘킬미 힐미’가 2008년 기획한 원안을 바탕으로 했다고 발표하자 “왜 뒤늦게 말을 바꾸냐”며 더욱 짙은 의심을 했다. 그러곤 ‘지킬박사는 하이드씨’도 사실 2006년에 출발한 작품이라고 뒤늦게 알렸다. 그 역시 그의 논리에 따라 말을 바꾼 셈이다.

하이드 지킬 나 포스터.
이충호 작가는 ‘작품이 언제 출발했는지의 시점’이 표절 시비를 가리는 쟁점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행 법이 창작물을 보호하는 저작권은 단순히 우선순위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를 따지는 대목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데일리 스타in에 “창작자 사후 몇년까지 창작물의 저작권을 보호한다는 법이 물론 있다”며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 작품 자체를 통으로 보호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김건모가 부른 ‘잘못된 만남’이란 노래의 가사를 작사가 허락 없이 몽땅 따온다면 저작권법에 위반이 되겠지만, ‘그 어느 날 너와 내가’라는 노랫말 한마디가 겹쳤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별에서 온 그대’가 표절 시비에 휘말린 당시 남자주인공의 설정이 워낙 독특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지?’라는 당황스러움이 표절에 대한 의심을 키웠을 것이다”며 “그렇게 따지면 성장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재벌 2세와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왜 표절로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출생의 비밀, 엇갈리는 러브라인 등 ‘막장 드라마’의 공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장치에 대해서 누구도 표절 문제를 제기하지 않듯, 큰 틀에서의 캐릭터 유사성, 내용 전개의 중첩은 표절이 아닌 ‘트렌드’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킬미 힐미’와 ‘하이드 지킬 나’는 사실 다중인격을 가진 남자와 그를 사랑해주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전혀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때문에 이충호 작가의 반발이 일었을 때도 ‘하이드 지킬 나’ 측이 서둘러 논란을 진화하며 “각자의 작품을 응원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현 저작권법, 함정은 없나

계속되는 논쟁은 피로도를 높인다. 양측 모두에게 상처가 되고, 지켜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마음이 아프다. 현 저작권법이 속시원히 해결해줄 방법은 없는걸까.

일각에서는 그 법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이충호 작가의 말대로 방송계와 만화계 등 영역을 나누어 ‘갑을 관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방송사 입장에서 져야할 책임을 보다 세밀하게 법으로 규정해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영화 ‘관상’ 포스터.
또 다른 법률관계자는 “보통 방송사를 상대로 표절 시비를 제기한 경우 대부분이 패소했다”며 “그건 드라마가 ‘미완의 작품’이라 가능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했다. 비록 아이디어와 소재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우기면(?) 재판부의 판단도 어려워진다는 것.

이 관계자는 “방송 전이건 후건 드라마는 마지막회까지 대본이 나와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작품이 아니다”며 “현행 법에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보는 경우는 ‘구체적인 표현’, ‘아이디어’를 도용했을 때인데, 방송을 앞둔 드라마가 그보다 앞선 작품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해도 ‘이야기의 방향과 내용 구성 자체가 다르게 갈 것’이라고 어필하면 상황은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 ‘관상’과 드라마 ‘왕의 얼굴’이 표절 공방을 벌였을 때도 그랬다. ‘관상’의 제작사인 주피터필름은 “‘왕의 얼굴’이 영화의 독창적 표현방식을 그대로 도용했다”며 “침으로 주요 등장인물의 관상을 바꾸고, 관상을 이용해 진짜 범인을 찾아내고,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벗고, 멀쩡한 사람을 맹인으로 만드는 등의 이야기가 같다”고 주장했다. KBS 드라마국은 “‘왕의 얼굴’만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고 차별화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관상’ 측은 영화의 드라마화를 위해 KBS와 논의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셈이 됐다.

B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저작권법이 ‘구체적인 표현’이라던가 ‘아이디어’ 등의 모호한 기준을 세우고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그걸 제대로 알고 있는 업계 관계자들도 많지 않은 현실”이라며 “특히 드라마 시장에서는 향후 이런 일로 물질적-정신적 비용을 낭비하지 않도록 시나리오 단계부터 ‘한줄 설명’이 아닌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섬세한 기획이 요구돼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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