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널드 파머, 벤 호건-니클라우스 제치고 '킹(KING)'이 된 사나이

  • 등록 2016-09-26 오전 10:42:55

    수정 2016-09-26 오후 4:09:22

아널드 파머(사진=AFPBBNews)
[이데일리 김인오 기자] ‘골프 전설’ 아널드 파머(미국)가 별세했다.

AF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26일(한국시간) 메이저대회 6승을 거둔 파머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지난해 8월 심장 수술을 받은 파머는 최근 건강이 나빠졌고, 잠을 자던 도중 조용히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골프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파머는 192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골프클럽 잔디관리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3살 때 아버지가 짧게 잘라준 골프 클럽을 들고 골프를 시작한 파머는 8살 때 골프 룰을 완벽하게 습득했고, 에티켓도 배웠다. 100타를 돌파한 것도 8살 때다.

프로 전향은 1955년이다. 1954년 US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한 후 곧바로 프로 무대로 뛰어들었다. 첫 우승도 데뷔 해에 열린 캐나다 오픈에서 일궈냈다. 파머는 PGA 투어에서 62승을 거뒀다.

메이저대회 통산 승수는 7승이다. 첫 우승은 1958년 ‘명인열전’ 마스터스에서 이뤘다. 1960년에는 US오픈을 들어올렸고 마스터스를 다시 제패했다. 1961년과 1962년에는 디오픈 챔피언십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마스터스에서 두 차례(1962년, 1964년) 더 그린재킷을 입은 파머는 불행히도 PGA 챔피언십 우승이 없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

파머의 별명은 킹(The King)이다.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인정받는 벤 호건(미국)과 메이저대회 18승을 거둔 잭 니클라우스(미국)도 있지만 골프팬들과 미디어는 파머를 킹으로 인정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계산적인 플레이가 아닌 공격적인 플레이로 매 대회 환호를 받았고, 상류사회의 스포츠라는 인식을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파머의 전성기 시절에는 골프를 모르는 관중들도 그를 보기위해 모여 들었다. 그 수가 적지 않아 ‘아니의 군대(Arnie’s Army)‘라 불릴 정도였다.

은퇴 후에도 파머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골프 용품, 음료, 미디어 사업을 성공시켰고,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 대회도 만들어졌다. 고향에 있는 비행장 이름 역시 ‘아널드 파머 공항’이며 공항 입구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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