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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을 무려 8개나 잡아내는 역투. 비록 승리 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보는 이들의 가슴을 뻥 뚫어 주는 투구였다. 특히 지난 등판서 부진했던 탓에 더 가슴졸여야 했던 팬들의 놀란 가슴을 다독여주는 위로투였기에 더욱 든든했다.
다만 거의 완투 페이스로 이끌던 경기, 1-1 동점이던 6회에 투구수가 32개까지 치솟았고 결국 동점까지 허용한 대목은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그 고비만 잘 넘겼다면 ‘승리 투수’라는 훈장까지 달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특히 첫 타자 루벤 테하다를 상대로 먼저 스트라이크 두 개를 잘 잡아 놓고 볼넷을 내준 장면이 포인트가 됐다. 3,4구를 내리 타자 눈 높이 이상으로 빼도록 유도했던 포수 라몬 에르난데스의 볼 배합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류현진을 믿지 못하고 무의미한 유도 피칭을 한 것이 잘 던지던 류현진의 밸런스를 무너트리고 투구수만 늘렸다’는 것이 초점이다.
정답이란 없는 것이 야구인 만큼 그 상황에서 이전 이닝 처럼 빠른 승부를 들어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류현진은 경기 후 모든 이들로 부터 경기후 최고의 피칭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으며, 이 경기는 다저스의 승리로 끝났다는 점이다. 그 뒤엔 물론 경기 전체를 잘 이끈 에르난데스의 공도 포함 돼 있다.
류현진이 한화서 뛰던 시절, 감독을 역임한 한대화 현 KIA 2군 총괄 코치는 류현진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때로는 정말 바보가 아닌가 싶은 적이 많았다.”
허약한 팀의 에이스, 부실한 득점 지원과 잇단 실책으로 자신의 승리가 날아가도 그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 이미 교체가 결정된 뒤에도 상대를 속이기 위해 덕아웃 앞에서 ‘위장 몸풀기’를 해서 상대 보다 한화 벤치를 더 놀라게 했던 적도 있다.
그의 모습은 “내 1승 보다 팀의 1승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의 진정성을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들었다. 동료들에게는 ‘류현진이 정말 우리와 함께 야구하는 것에 감사하고 즐거워 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그것이 류현진의 가장 큰 무기다. 신인 시절 몇번 얼굴에 속내가 드러날 때가 있어 엄하게 주의를 줬는데 이후로는 절대 그러지 않더라”고 평가한 바 있다.
류현진이 이날 경기 후 보여 준 담담함은 체인지업이나 이날 최고의 활약을 펼친 슬라이더 못지 않게 중요한 그의 주무기가 무엇인지를 또 한번 깨닫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류현진은 올시즌 당장 다승왕이 되거나 사이영상을 받아야 할 선수가 아니다. 지금 1승 보다 더 중요한 건 팀과 메이저리그에 대한 적응이다. 그가 이 과정을 잘 이겨낸다면 언젠가 정말 최고의 자리에도 설 수 있게 될 거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자신에게서 문제를 먼저 찾는 것이 발전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경기 후 한국에서 그랬던 것 처럼 담담하게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류현진의 모습이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