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의 추운 겨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서 지도자 김성근은 여전히 ‘감독님’이었기 때문이다.
한 바탕 광풍이 지나가고 맞게 된 그의 생일. 하필이면 그 해는 김 감독의 환갑이었다. 자칫 또 한 번의 아픔으로 남게 될 뻔했던 그 날. 김 감독은 기쁨의 눈시울을 적셨다. 제자들이 성대한 회갑연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빛났던 건 당시 LG 선수 대부분이 참석했었기 때문이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붐비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속담 처럼, 떠난 이에게 유독 냉정한 것이 우리네 정서다. 하지만 김 감독이 떠난 자리엔 제자들의 눈물이 남았다. 그래서 유명해진 사진 한 장이 있다.
그러나 이 사진 하나 만으로는 당시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LG 선수들이 모두 참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이 사진 속엔 회갑연을 실제 준비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 이의 모습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당일까지 이런 자리가 마련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 제자로부터 식사나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 성대한 잔치가 열려 있었다.
김 감독의 회갑연을 마련한 사람은 바로 23일 사퇴 의사를 밝히고 팀을 떠난 김기태 LG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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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꾸준히 김성근 감독과 인연을 이어갔고, 그가 야인이 됐을 때 오히려 누구보다 화려하고 성대한 잔치를 자비로 준비했다. 사람들은 그런 김 감독의 모습을 보며 “이런 점이 인간 김기태의 진짜 매력”이라고 했었다.
어쩌면 김기태 감독의 외로움도 그리 길게 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LG 선수들, 특히 그를 많이 따랐던 고참 선수들은 하나같이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에 가슴 아파 하고 있다. 한 고참 선수는 “지금은 완전히 멘붕상태다. 하지만 마음이 정리되는대로 선수들과 함께 감독님을 찾아가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