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김기태'를 말해주는 한 장의 사진

  • 등록 2014-04-24 오전 11:06:43

    수정 2014-04-24 오후 12:01:25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12년 전 겨울, 김성근 감독(현 고양원더스 감독)은 가장 외로운 야구인이었다.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던 LG 트윈스를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고, 당대 최강이었던 삼성을 마지막 순간까지 매섭게 몰아붙이는 명승부를 펼쳤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해고 통보였다.

하지만 그의 추운 겨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서 지도자 김성근은 여전히 ‘감독님’이었기 때문이다.

한 바탕 광풍이 지나가고 맞게 된 그의 생일. 하필이면 그 해는 김 감독의 환갑이었다. 자칫 또 한 번의 아픔으로 남게 될 뻔했던 그 날. 김 감독은 기쁨의 눈시울을 적셨다. 제자들이 성대한 회갑연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빛났던 건 당시 LG 선수 대부분이 참석했었기 때문이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붐비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속담 처럼, 떠난 이에게 유독 냉정한 것이 우리네 정서다. 하지만 김 감독이 떠난 자리엔 제자들의 눈물이 남았다. 그래서 유명해진 사진 한 장이 있다.

회갑연이 끝나고 찍은 단체 사진 속, 김성근 감독과 고락을 같이 했던 LG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구단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스승의 뜻 깊은 생일에 빠질 수 없다는 마음이 그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던 것이다.

김 감독은 당시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생일이었다”며 제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었다.

그러나 이 사진 하나 만으로는 당시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LG 선수들이 모두 참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이 사진 속엔 회갑연을 실제 준비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 이의 모습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당일까지 이런 자리가 마련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 제자로부터 식사나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 성대한 잔치가 열려 있었다.

김 감독의 회갑연을 마련한 사람은 바로 23일 사퇴 의사를 밝히고 팀을 떠난 김기태 LG 감독이었다.

단체 사진을 찍기 전 모습. 김기태 LG 감독(오른쪽에서 네 번째)은 자리만 정리한 뒤 정작 사진을 찍을 땐 뒤로 빠져 있었다.
김기태 감독은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김성근 감독과 함께 했었다. 하지만 구단 재정난으로 삼성에 트레이드 된 뒤엔 이렇다 할 인연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꾸준히 김성근 감독과 인연을 이어갔고, 그가 야인이 됐을 때 오히려 누구보다 화려하고 성대한 잔치를 자비로 준비했다. 사람들은 그런 김 감독의 모습을 보며 “이런 점이 인간 김기태의 진짜 매력”이라고 했었다.

김성근 감독은 23일 밤, 제자의 자진 사퇴를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그는 “지금 어디선가 혼자 고민하고 있을거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리더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길인지 새삼 두렵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어쩌면 김기태 감독의 외로움도 그리 길게 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LG 선수들, 특히 그를 많이 따랐던 고참 선수들은 하나같이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에 가슴 아파 하고 있다. 한 고참 선수는 “지금은 완전히 멘붕상태다. 하지만 마음이 정리되는대로 선수들과 함께 감독님을 찾아가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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