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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왕표는 ‘박치기왕’ 김일의 수제자로 1975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그가 처음 링에 올랐을 때만 해도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나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고 이왕표는 마치 영화 속 ‘슈퍼히어로’처럼 링 위를 펄펄 날아다니는 선수였다. 그의 화려한 공중기술에 많은 팬, 특히 어린이들이 열광했다.
고 이왕표는 이후 지금까지 한국 프로레슬링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대 들어 야구, 축구 등 다양한 프로 스포츠의 인기에 밀려 프로레슬링은 급속도로 쇄락했다. 특히 잊을만하면 불거진 ‘쇼’ 논란은 프로레슬링에 결정적인 치명타가 됐다.
현역 시절 “프로레슬러는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던 고 이왕표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2009년과 2010년 종합격투기 선수 밥 샙(미국)과 격투기 경기를 치러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크고 힘이 센 상대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고 맞서 싸웠던 이왕표를 쓰러뜨린 것은 병마였다. 고 이왕표는 2013년 담낭암을 선고받고 필사적인 투병 생활에 돌입했다. 담낭암은 생존율이 10%도 안될 정도로 위험한 암으로 꼽힌다. 유서를 미리 써놓고 수술대 위에 올랐던 이왕표는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났다.
지금은 프로레슬링이 각본에 의한 스포츠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고 이왕표는 눈을 감기 전까지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처럼 다른 프로레슬링은 쇼였는지 모르지만 그의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닌 진심이었다.
고 이왕표의 빈소는 서울 현대 아산병원에서 마련됐고 발인은 8일이다. 장지는 일산 청아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