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인’ vs 영화 ‘열한시’, 그 기묘한 평행이론 속으로

  • 등록 2013-11-22 오전 11:14:07

    수정 2013-11-22 오전 11:14:07

드라마 ‘나인’(왼쪽) 포스터와 ‘영화 ’열한시‘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그 사이 숱한 드라마가 ‘앓이’를 양산했던 지라, 불과 6개월 전 이야기인데도 아련하다. 케이블채널 tvN에서 방송돼 지난 5월 종방된 20부작 미니시리즈 ‘나인’을 기억하는가.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시청률 조사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을 만큼 ‘본방 사수’ 수치를 뛰어 넘는 파급력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 어떤 타임슬립 소재의 장르 중에서 시간 여행을 획기적으로 녹여낸 ‘웰메이드 연출’로 수 많은 ‘앓이’를 양산했던 ‘나인’. 그 후 이렇다할 짜릿한 관전 포인트를 찾지 못했을 ‘나인 앓이’들이 반길 만한 작품이 또 한번 세상에 나온다.

영화 ‘열한시’ 스틸.(사진=CJ E&M 제공)
◇프롤로그-‘열한시’ 넌 누구냐

이번엔 영화다. 배우 정재영과 최다니엘, 김옥빈이 주연한 영화 ‘열한시’. 한 회 한 회, 손 꼽아 기다리는 ‘밀당’의 마력은 덜하겠지만 99분의 시간 동안 혼을 뺏긴 관객의 뇌는 분명 몇날 몇일을 ‘열한시’를 곱씹느라 바쁠 거다. ‘광식이 동생 광태’, ‘시라노 연애 조작단’ 등으로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건드렸던 김현석 감독이 국내 최초로 타임머신이라는 장치를 앞세워 만든 타임스릴러 장르다. ‘나인’을 로맨스와 스릴러를 합친 ‘로맨스릴러’ 장르라며 열광했던 이들이라면 ‘열한시’를 즐길 공통분모를 이미 안고 있다.

다만, 블록버스터의 화려함을 기대하진 말 것. 웅장한 스케일이지만 타임슬립이라고 해서 SF 장르 다운 스펙타클함은 없다. 오히려 블록버스터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단막극 같은 디테일한 연출에 퍼즐처럼 맞춰지는 각본이 중심을 잡고 있다.

‘열한시’(위)의 정재영과 ‘나인’의 이진욱.
◇챕터1 ‘나인’ vs ‘열한시’, 과거 vs 미래

평행이론의 첫 번째는 시간여행이다. ‘나인’도 ‘열한시’도 시간이동이 가능한 설정이다. ‘나인’에서는 다소 판타지처럼 그려지고 ‘열한시’는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때문에 ‘열한시’의 시대적 배경은 지금보다 조금 먼 미래. 걸그룹 소녀시대의 윤아와 걸그룹 미쓰에이의 수지가 하루 차이로 결혼 발표를 하는 3년 전으로 그려졌으니, 2020년을 넘기지 않은 미래로 설정돼 있다.

시간 여행의 공통분모를 안고 두 작품은 반대로 달려간다. ‘나인’은 과거로의 여행을, ‘열한시’는 미래로의 이동을 지향한다. 목표는 비슷해보인다. 과거를 보고 온 남자(‘나인’)와 미래를 경험하고 온 연구원들(‘열한시’)이 바꾸려는 건 ‘현재’이기 때문.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갈망, 소중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욕망, 이런 인간의 본능은 두 작품 어디에서든 드러난다.

과거든 미래든, 무언가를 보고 온 이들은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나인’의 이진욱(위)과 ‘열한시’의 김옥빈(아래 왼쪽), 정재영(아래 오른쪽).
◇챕터2 ‘나인’ vs ‘열한시’, -20년 vs +24시간

과거로, 미래로, 시간이동을 하는 두 작품에서 비슷한 듯 다른 또 다른 지점은 여행의 기간에 있다. ‘나인’에서는 20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열한시’에서는 24시간, 하루 뒤로 이동한다.

‘유예 기간’도 다르다. ‘나인’은 30분, ‘열한시’는 15분의 시간 내에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다녀올 수 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고 와야 한다는 긴박감은 ‘나인’에서나 ‘열한시’에서나 마찬가지. 짧은 시간 내에 압축적으로 많은 걸 보여줘야 하는 ‘열한시’가 긴박감을 더할 수 있다. 게다가 ‘나인’에서는 9번의 시간 이동이 가능하지만 ‘열한시’에서는 단 한번의 절체절명한 기회만이 주어지기 때문에 관객들이 느낄 긴장감은 더욱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열한시’에서는 타임머신으로 시간이동을(위), ‘나인’에서는 향을 피워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챕터3 ‘나인’ vs ‘열한시’, 향 vs 트로츠키

세 번째 포인트는 시간 이동의 장치다. ‘나인’에서는 향을 피우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역시나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하다. ‘열한시’에서는 보다 현실적이다. 트로츠키라는 이름을 붙인 타임머신이 등장한다.

타임머신이 미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블랙홀과 웜홀 등 우주과학 용어가 등장하고, 수학 시간을 연상시키는 듯, ‘코사인, 사인, 탄젠트’ 이런 식의 대사들도 나온다. ‘열한시’의 김현석 감독은 이 부분에서 최대한 과학적 근거를 두기 위해 카이스트 내 영화 동아리에서 사람을 뽑아 스태프로 기용하기도 했다.

‘열한시’(왼쪽)에서는 미래를 본 이들의 현재 바꾸기가, ‘나인’에서는 과거를 보고 온 남자의 현재 바꾸기가 그려진다. 과연 가능했을까.
◇챕터4 ‘나인’ vs ‘열한시’, 가능 vs 불가능

과거건, 미래건, 향이건, 타임머신이건, 20년 전이건, 24시간 후건, 결국 ‘나인’과 ‘열한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진다. ‘현재를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다.

‘나인’에서는 바꿨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해피엔딩을 꿈꾸고 바꿔 놓은 과거 때문에 현재에서 그와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을 만들었다. 그 반전에서 감정이입된 시청자들의 마음이 무너졌다.

‘열한시’에서는 어떻게 될까. ‘열한시’의 등장인물이 버릇처럼 하는 말 중엔 “과거는 바꿀 수 없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잃어버린 아내도, 떠나보낸 아빠도 다시 살려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열한시’가 하루 앞선 시간 이동을 통해 보다 나은 현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관객의 판단에 맡겨야 할 부분이다.

‘열한시’의 작품과 각 캐릭터의 메시지를 드러낸 포스터 4종.(사진=CJ E&M 제공)
◇에필로그-‘열한시’ 넌 누구냐

‘열한시’는 한계를 인지해서 슬픈 영화다. 바꿀 수 없는 과거 때문에 행복한 미래를 보고자 하는 감성적인 열망은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야만 가능한 현실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살 수 있게 만드는 건 그 과정에서 의지가 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절대 바꿀 수 없어서 더 소중한 추억이 있기 때문일 터. 명확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나인’에서는 뚜렷하게 그려졌던 선악 구도가 ‘열한시’에서는 베일에 가려져있는 것도,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사람,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이들은 없다는 걸 말해준다.

‘나인’의 명대사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럼 인생 제대로 못 살 거 같지 않아?” ‘열한시’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과거로 가 미래를 바꿀 기회를 가졌던 한 남자의 딜레마, 그리고 미래로 가 현재를 바꿀 기회를 가진 이들의 딜레마. 어떤 것에 빠지든 그 추리는 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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