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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체육은 정책적으로 특정 소수의 엘리트 선수들에게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훈련시켜 국제대회 등에서 메달 획득의 가능성을 높이는 스포츠를 의미한다.
엘리트 체육의 역사는 국가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18세기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체육을 통한 질서 및 통일성, 복종심 등이 강조됐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체육=국력’이라는 개념은 더욱 강해졌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독일 나치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완벽한 선전장이 됐다. 냉전 시대에는 이념 경쟁이 스포츠 무대에 고스란히 펼쳐졌다.
한국 엘리트 체육도 국가적인 목표에서 출발했다. 1971년 전국체전 개회식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스포츠 정신 생활화를 통해 나라를 위해 언제든 사리를 희생할 줄 아는 진정한 민주시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체육특기자 제도가 생겼고 국가대표 집단 훈련시설인 태릉선수촌을 탄생했다. 우수 선수를 길러내기 위한 체육 전문학교도 문을 열었다.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엘리트 체육의 가장 큰 목표는 국위 선양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올림픽에서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은 정권의 좋은 홍보수단이 된다”며 “스포츠 관련 이슈가 국가와 결부되면서 국위선양, 국가 브랜드, 경제효과 등이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한국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발전했다. 1970년대까지 단 1개뿐이었던 올림픽 금메달은 8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역대 최다인 13개 금메달을 수확하며 세계 5위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하지만 엘리트 체육의 그늘은 컸다. 운동선수는 성적지상주의에 파묻혀 메달 따는 기계로 전락했다. 운동의 즐거움이나 개인적 성취 대신 국가를 대표한다는 의무와 책임만이 뒤따랐다. 메달의 화려함 뒤에 추악한 부작용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엘리트 체육의 고민 속에서 부각된 것이 생활체육이다. 생활체육의 개념은 1950년대 이후 미국과 독일에서 유행한 진보적 교육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체육 활동이 기본적으로 놀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체육 활동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목표다.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생활수준과 의식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의 행복을 더 신경 쓰게 된다. 스포츠는 ‘국력’이 아닌 ‘복지’라는 의식이 더 커진다”며 “생활체육 중심의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은 국민들의 운동권을 보장해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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