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각본가는 왜 DMZ 동물들로 애니를 만들었을까 [인터뷰]

홍인표 감독 인터뷰
'서울의 봄' 각본·'DMZ 동물 특공대' 연출
"분쟁의 원인=인간의 욕망"…동물들의 눈으로 본 평화
차기작은 하나회 해체 그린 '서울의 봄' 제작사 신작
  • 등록 2024-02-16 오전 11:18:15

    수정 2024-02-16 오전 11:18:15

홍인표 감독.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이 모든 분쟁의 원인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욕심과 욕망 때문이 아닐까 결론을 내렸어요. 위로 올라가려고만 했던 주인공 담비가 결국 아래로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방향을 정하는 순간 이야기는 풀리기 시작했죠.”

애니메이션 영화 ‘DMZ 동물 특공대’를 연출한 홍인표 감독은 “영화 속 담비가 짊어진 무거운 폭탄에 빗대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평화였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진정한 평화는 누군가를 걷어차서라도 자신 혼자서 사다리를 오르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결단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지난 14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DMZ 동물 특공대’를 연출한 감독이 지난해 말 개봉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영화 ‘서울의 봄’의 초고를 쓴 각본가라 이야기한다면 믿는 사람이 있을까. 묵직한 현대사 누아르를 집필한 작가가 어린이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다니. 제3자의 눈에 겉으로만 봐선 쉽게 연결되지 않던 그의 선택을 ‘DMZ 동물 특공대’를 관람한 뒤엔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공도 장르도, 영화의 결말도 다르지만, ‘서울의 봄’과 ‘DMZ 동물 특공대’는 모두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불러일으킨 갈등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다.

동물들이 통일 반대?…韓만 할 수 있는 이야기

홍인표 감독은 ‘DMZ 동물 특공대’의 개봉을 기념해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DMZ 동물 특공대’는 ‘서울의 봄’의 각본을 쓴 홍인표 감독이 처음 연출한 장편 영화다. ‘서울의 봄’ 이전에는 ‘덕혜옹주’, ‘로봇, 소리’ 등 영화들의 제작총괄을 맡았고, 단편 영화 ‘스파게티 스톰’으로 2014년 대한민국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다

홍인표 감독은 첫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이게 된 계기와 소감에 대해 “첫 작품을 꼭 애니메이션을 하겠다고 정한 적은 없다. 다니던 회사를 2017년 초 그만두고 열심히 시나리오를 썼다”며 “그 중 ‘서울의 봄’도 ‘DMZ 동물 특공대’도 있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겪고 나온 작품이라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전했다. 그는 “단순한 선과 면으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에 어릴 때부터 매료돼있었다. 하지만 처음 애니 시나리오를 쓸 땐 국내 애니 제작비가 이렇게 어려울진 몰랐다”며 “겁없이 도전했고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준비 과정을 떠올렸다. 이어 “영화 제작에서 CG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고 영화와 애니의 경계도 어떤 측면에서 많이 사라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DMZ 동물 특공대’는 남북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단 하나뿐인 공간 DMZ에 살고 있는 담비와 쾡이, 맷돼이먼, 황박이, 람쥐 친구들의 모험을 담은 애니메이션 영화다. 로그라인만 보면 깜짝 놀랄 수 있다. 남북 평화 기류 소식을 접한 동물들이 남북이 화해하면 자신들의 터전인 DMZ도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에서 비롯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담비를 필두로 동물들이 통일을 반대하기 위해 판문점에 폭탄을 설치하는 모험을 떠나면서 겪는 소동극이다. 다만 그 안에서 동물들이 평화란 명분 뒤에 숨어 실리를 챙기기에만 바쁜 인간들의 욕망을 맞닥뜨리고, 떨어진 가족들을 만나며 진정한 우애와 평화가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과정도 담겨있다. 75분으로 러닝타임은 짧지만 뮤지컬과 모험, 가족 드라마의 요소가 고루 들어가 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순화하고 단순화하는 작업도 거쳤다.

홍인표 감독은 “제작사에서 처음 기획한 이야기를 보여준 게 2018년 말이다. DMZ에 사는 동물들이 통일을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귀여우면서도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와 큰 고민 없이 선택했다”며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전 세계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DMZ란 특정 지역을 다루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확대할 여지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캐릭터 수를 줄이며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폭탄 설치를 떠올렸다. 애니메이션이니 가능한 상상이고, 인간이 아닌 동물이 벌이는 일로서 톤앤 매너에 따라 재미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도 부연했다.

평화의 메시지…차기작은 ‘서울의 봄’ 제작사 신작

가장 기본적이며 우리 살과 맞닿은 주제인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지만, 풀어내는 과정은 오히려 어려웠다. 홍 감독은 “내가 쓴 시나리오 중 가장 힘들었던 작품 중 하나”라며 “소재의 장점이 있는 반면, 동물이 어디까지 인간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 등 설정을 완전히 새로 짰다. 나중엔 인간을 배제해보려고도 했으나 결국 그럴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을 만든 건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아이들에게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자 전개의 속도감도 높였다.

캐릭터들의 구축과, 동물 캐릭터들의 실감나는 털을 구현한 과정도 전했다. 홍 감독은 “담비가 야무지게 생겨서 날렵하면서 귀엽더라. 그래서 주인공으로 결정했다”며 “배경도 숲 속이고 털 많은 동물들이 주인공이라 한정된 예산으로 표현하기 십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언리얼 게임엔진을 활용한 제작 방식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DMZ란 공간에 필요한 현실감도 게임엔진 덕에 구현이 가능했다고.

자칫 정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소재에 대한 우려는 없을까. 그는 “무관심보단 논란이, 무플보단 악플이 더 도움이 된다 생각한다”면서도, ‘영화를 보고나면 그런 우려가 무색해질 정도로 선명한 주제를 갖고 있다. 평화라는 표어가 무시되는 시기에 영화에 담긴 메시지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 조금이라도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국내에서 점점 더 애니메이션이 받는 지원이 열악해 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내비쳤다. 홍 감독은 “영진위의 애니메이션 지원이 없었다면 이 작품도 만들 수 없었다”며 “국내에 애니를 잘 만들 수 있는 여건은 조성돼있는데,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보니 기획 및 제작, 투자 배급으로 이어지는 생태계 연결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겨내서 더 효율적으로 멋진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첫 천만 영화 ‘서울의 봄’을 향한 성원에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홍인표 감독은 “긴 시간 열심히 썼지만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김성수 감독님이 결정되고, 황정민 배우가 전두광 캐릭터를 하기로 하며 조심스레 흥행을 점칠 수 있었다”며 “긴 기간 지켜봐준 사람들이 축하해주는 것도 고마웠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홍인표 감독의 차기작도 이미 정해졌다. 홍인표 감독은 현재 ‘서울의 봄’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신작 ‘YS 프로젝트’(가제)의 각본을 집필 중이다. ‘서울의 봄’에서 반란을 주도한 세력 하나회의 해체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홍 감독은 “드러난 것보다 숨겨진 이야기가 더 많아 인물과 구조를 잡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가 나온 것처럼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예요. 한국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게임 회사도, 세계의 유명 애니메이션을 외주 받아 제작하는 회사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하나로 엮어줄 작품들이 잘 기획된다면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자리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작품을 연이어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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