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A고등학교에서 만난 전(前) A고등학교 축구팀 감독 B 씨는 “기사를 읽고 느낀 점이 많았다”며 “슈틸리케 감독이 짧은 시간에 한국 축구를 정확히 파악했다. 벌거벗은 기분이었다”며 입을 열었다.
B 씨는 한때 ‘4강 청부사’로 불릴 정도로 고교 축구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B 씨가 감독으로 있을 때만 해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전국대회에서 4강 안에 들면 학생들은 대학 체육특기자로 입학허가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지금은 특기생 선발에 면접과 실기 시험 등이 추가됐지만, 여전히 대학에선 대회 성적에 큰 비중을 둔다.
지난 30년의 지도자 생활을 돌아본 B 씨는 “후회한다”고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그는 “결과가 있어야 감독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며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어떤 잘못된 방법이 4강 청부사였던 B 씨를 고개 숙이게 한 걸까.
최저학력제(수업권 보장을 위해 선수의 점수를 교과별 평균 성적과 비교, 초등학교 50%, 중학교 40%, 고등학교 30%을 넘어야 대회 참가를 허락하는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던 2010년 이전에는 교실에서 선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연간 출석률의 3분의 2만 채우면 됐다. 때문에 감독은 선수들과 합숙까지 해가며 연습했다.
B 씨는 “아이들이 친구가 없다. 매일 갇힌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며 크는데,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나도 아이들의 인성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성적에 연연하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일일이 모든 아이를 챙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들에게 이야기를 꺼낸 적도 있다. 그러나 선수 부모들은 아이들보다 한술 더 뜬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대학교에 입학시켜달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선수를 자녀로 둔 학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선수들의 대학 진학 이후다. 축구만 해오던 아이들이 프로팀에 진출하지 못하면 은퇴의 갈림길에 선다. 여기서 문제가 불거진다. 한 관계자는 “명문대에 진학한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많은 선수가 프로팀에 진학한다고 생각하나”고 되물으며 “많아야 10%다. 이외의 선수들은 다른 진로를 정해야 하는데 배운 게 축구뿐이 없는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며 한숨 쉬었다.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C 고등학교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 중인 D 학생(16)은 “다행히 나는 축구를 즐기면서 하고 있지만,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며 “부모님의 성화에 억지로 축구선수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 숙소에 가면 매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설명했다.
[즐기는 스포츠의 힘①] "한국 축구는 힘든 노동…스페인 축구는 즐기는 예술"
[즐기는 스포츠의 힘②]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즐기는 스포츠의 힘④] FC 오산 즐기는 것에 '골인'
[즐기는 스포츠의 힘⑤] 모리엔테스 "축구강국 스페인에 체육특기생은 없다"▶ 관련기사 ◀
☞ [즐기는 스포츠의 힘①] "한국 축구는 힘든 노동…스페인 축구는 즐기는 예술"
☞ [즐기는 스포츠의 힘②]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 [즐기는 스포츠의 힘④] FC 오산 즐기는 것에 '골인'
☞ [즐기는 스포츠의 힘⑤] 모리엔테스 "축구강국 스페인에 체육특기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