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스포츠의 힘③] 한국은 득점기계 키우는 데 '올인'

우승에 목매는 사람들
30년 고교 축구감독
결과 있어야 지도자 자리 유지
죽자사자 성적에 올인 후회 돼
학생도 부모도 재미상실
선수"억지로 축구…그만두고 싶어"
학부모 "배운 게 축구뿐 그만 못 둬"
  • 등록 2016-06-28 오전 10:04:03

    수정 2016-06-28 오전 10:44:26

위 사진은 본 글과 관련이 없습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조희찬 기자] 6월초 1-6으로 대패한 스페인전 이후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은 “조금 변화해선 안된다. 큰 혁명이 일어나야 할 정도다.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축구계, 더 나아가 한국 스포츠의 폐부를 찌르는 일침이었다.

지난 주말 A고등학교에서 만난 전(前) A고등학교 축구팀 감독 B 씨는 “기사를 읽고 느낀 점이 많았다”며 “슈틸리케 감독이 짧은 시간에 한국 축구를 정확히 파악했다. 벌거벗은 기분이었다”며 입을 열었다.

B 씨는 한때 ‘4강 청부사’로 불릴 정도로 고교 축구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B 씨가 감독으로 있을 때만 해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전국대회에서 4강 안에 들면 학생들은 대학 체육특기자로 입학허가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지금은 특기생 선발에 면접과 실기 시험 등이 추가됐지만, 여전히 대학에선 대회 성적에 큰 비중을 둔다.

지난 30년의 지도자 생활을 돌아본 B 씨는 “후회한다”고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그는 “결과가 있어야 감독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며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어떤 잘못된 방법이 4강 청부사였던 B 씨를 고개 숙이게 한 걸까.

최저학력제(수업권 보장을 위해 선수의 점수를 교과별 평균 성적과 비교, 초등학교 50%, 중학교 40%, 고등학교 30%을 넘어야 대회 참가를 허락하는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던 2010년 이전에는 교실에서 선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연간 출석률의 3분의 2만 채우면 됐다. 때문에 감독은 선수들과 합숙까지 해가며 연습했다.

2011년부터 최저학력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이같은 모습이 사라졌지만, 실제로 제도가 정착됐는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학교가 끝나면 교내 마련된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선수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B 씨는 “아이들이 친구가 없다. 매일 갇힌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며 크는데,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나도 아이들의 인성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성적에 연연하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일일이 모든 아이를 챙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들에게 이야기를 꺼낸 적도 있다. 그러나 선수 부모들은 아이들보다 한술 더 뜬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대학교에 입학시켜달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선수를 자녀로 둔 학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선수들의 대학 진학 이후다. 축구만 해오던 아이들이 프로팀에 진출하지 못하면 은퇴의 갈림길에 선다. 여기서 문제가 불거진다. 한 관계자는 “명문대에 진학한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많은 선수가 프로팀에 진학한다고 생각하나”고 되물으며 “많아야 10%다. 이외의 선수들은 다른 진로를 정해야 하는데 배운 게 축구뿐이 없는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며 한숨 쉬었다.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C 고등학교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 중인 D 학생(16)은 “다행히 나는 축구를 즐기면서 하고 있지만,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며 “부모님의 성화에 억지로 축구선수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 숙소에 가면 매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심리학 박사인 조수경 스포츠심리연구소 소장은 “선수는 일반적인 성장 발단 단계와 비교했을 때 ‘체계적인 독립성’을 키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자기개발에 대한 에너지 매니지먼트’를 할 수 없다. 이 경우 ‘방어기제’가 현저히 약해진다. 도덕적인 개념도 잘못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박사는 “장기적으로 운동선수들이 공부를 병행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면 지금의 10배, 20배의 스포츠 스타들이 나올 수 있다. 즐기는 스포츠도 여기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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