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애의 씨네룩]가난한 사람과 부자, 현실 민낯 들춘 리얼한 이야기

씨네LOOK…'기생충'
봉준호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 등록 2019-05-30 오후 3:15:57

    수정 2019-05-30 오후 3:15:57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가난한 사람과 부자는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사는 세계가 다르고 동선이 달라서다. 다른 세계, 다른 동선의 사람들이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지상도 아니고 지하도 아닌 반지하 주택에 전원 백수 가족이 살고 있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실직한 가장 기택, 해머 선수 출신 엄마 충숙, 5수생 아들 기우, 그리고 미대에 떨어진 딸 기정. 네 식구는 피자 박스를 접으며 근근이 살아간다. 어느 날 기우에게 명문대생 친구 민혁이 찾아와 자신이 해왔던 고액 과외 ‘알바’를 맡긴다. 가족에게 고정 수입이 생기는 흔치 않은 기회. “아버지, 저는 이게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내년에 이 대학 꼭 갈 거거든요.” 기우는 기정의 기술(?)을 빌려 가짜 재학증명서를 손에 들고 박사장네 집에 과외 면접을 보러 간다. 그렇게 발을 들인 박사장네 집은 눈이 부실 만큼 햇빛이 가득하다. 햇빛이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반지하와는 그야말로 딴세상이다. 기우는 사모 연교를 깜쪽같이 속여 영어 과외를 맡게 되고, 미술 선생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기정을 떠올린다.

‘기생충’은 극과 극 삶의 조건을 가진 두 가족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서 계급 차이를 비춘다. 저지대와 고지대, 반지하 주택과 고급 주택, 계단 등 공간 및 구조물과 무형태의 빛, 물 등을 통해서도 시각적으로 두 가족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영화는 접점이 없는 빈자 가족과 부자 가족을 과외로 연결시켜 계급 문제를 들추는데, 다른 어떤 집단도 아닌 가족의 이야기가 피부에 와닿는다.

‘기생충’은 빈부 격차와 계급 문제를 심각하게 풀어내지 않는다. 두 가족이 맞대는 지점마다 코미디, 서스펜스 등 다양한 장치로 영화적 재미를 높였다. 장르 변주의 귀재 봉준호 감독의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이라는 장기가 충분히 발휘된 작품이다. 영화 속에 다양한 은유와 상징이 등장하는 가운데 ‘냄새’, ‘선’에 대한 뉘앙스만으로 인간성을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통찰력은 무엇보다 탁월하다. 이 미묘한 표현을 선명하게 설득력 있게 완성시킨 건 송강호의 연기다. 여덟 명의 배우들이 빈틈 없는 연기를 한 가운데에서도 송강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기생충’의 묘미는 빈자와 부자인 두 가족을 단순히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짓지 않는 데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면과 악한 면을 갖고 있고, 이들 가족도 마찬가지다. 기우는 가족의 생계를 위함이라고 하지만 과외를 위해서 서류를 위조하고, 연교는 교양있는 척 품위있는 척 허세를 부리다가도 아들의 걱정에 눈물을 왈칵 쏟는 보통의 엄마다. 연교가 기정에게 “우리 제시카(기정) 순진해서 어떡해”라고 걱정하는 모습은 거짓이 아닌 진짜다. 인물들은 각자 처한 처지와 상황에 따라서 캐릭터가 수시로 변한다. 인물의 캐릭터 변화는 극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장치다.

‘기생충’은 왜 이 두 가족을 붙여놨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고, 빈자와 부자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늘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마주칠 일이 없어서다. 비행기를 탈 때에도 퍼스트와 이코노미로 동선이 나뉘고, 호텔에 묵을 때에도 분리된 공간에서 자고 먹는다. 그러한 차이와 구분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사라지고 여러 가지 폐해들이 나타난다. 몇 세대가 지났지만 개선은커녕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에 대한 공포감과 불안감이 ‘기생충’에 그려져 있다. 그래서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기택의 말이, 자꾸만 “계획이 뭐냐”며 집착하는 기우의 말이 아프게 들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사는 것은 무엇이며 함께 사는 것은 또 무엇인가. ‘기생충’이 묻는다.

감독 봉준호. 러닝타임 131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5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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