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아깝잖아요. ‘혈투’가 잘 안 됐지만 타고난 이야기꾼인데 말이어요. 본인이 글만 쓰겠다 하면 모르겠는데 영화를 하겠다고 하고. 그렇다면 한 번은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봤어요. 환경이 바뀌면 결과도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십자가를 짊어졌다. 스크린쿼터 투쟁의 중심에 섰다가 영화판 외곽으로 밀려났던 때와 같으면서도 다른 십사자다. 이번에는 될성부른 후배 영화인을 위해 가시밭길을 자처했다.
박 감독의 무엇이 ‘연기의 신(神)’ 최민식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그는 창작자로서의 근성을 첫 손에 꼽았다.
“신인 작가 시절에도 감독, 제작사 대표가 자기 시나리오를 마음대로 고치면 난리가 났어요. ‘악마를 보았다’ 각색 전 시나리오 제목이 ‘아열대의 밤’이었는데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었죠. 글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그 한 편으로 그 친구의 재능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또 굉장한 속필이에요. 일주일 만에 한 작품을 뚝딱 써내기도 하고. 한마디로 타협을 모르는 천재죠.”
최민식은 가장 먼저 ‘신세계’에 합류했다. 투자에 어려움을 겪으며 촬영이 지연될 때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너 나하고 일 하나같이 하자.” 극 중 잠입경찰 자성 역에 이정재를 섭외한 사람도 최민식이었다.
“박 감독이 대본을 보여주며 물었어요. 정청할래요, 강 과장할래요. 둘 다 매력적인데 제가 (잔인한 조폭) 정청을 했다면 아마도 ‘악마를 보았다’와 이미지가 겹쳐 보였을 거예요. 액션도 없고 강 과장 하겠다고 했죠. 작품을 위해서도 그게 맞고요. 폼나는 자성은 애초부터 열외였습니다.”
최민식은 양아치, 살인마, 깡패 등 스크린에서 주로 독한 모습을 보여왔다. ‘악마를 보았다’로 핏빛 연기의 정점을 찍었다. 사람은 무언가에 중독되면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마련이다. 뒤에 숨어 판을 짜는 강 과장 역할이 답답하진 않았을까. 그는 오히려 새로웠다고 말했다.
“평소 록 음악을 좋아한다고 계속 방방 뜨며 고함을 질러대면 그게 과연 재밌을까요? 이전 캐릭터가 크라잉넛의 ‘말달리자’ 였다면 이번 ‘신세계’의 강 과장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예요. 캐릭터가 세지 않다고 그 연기가 가벼운 건 아니죠. 말하자면 연주하는 악기가 다르달까요? 그 나름의 맛이 있어요. 저는 그 다름을 즐길 뿐이고요.”
최민식은 벌써 다음 작품 촬영에 들어갔다. ‘최종병기 활’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맡은 사극 액션 ‘명량, 회오리바다’에서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았다. 최민식은 “내가 표현하고자 건 ‘영웅 이순신’이 아니다”라며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바다를 지키고자 했던 ‘인간 이순신’. 외로움과 죄책감, 책임감 등으로 끙끙 앓는 장군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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